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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OCTOBER

[SPECIAL THEME]LOCAL TOUR

안동과 영주로 떠나는
풍류 가도

풍류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니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갈고닦으며 아름다움을 가까이한
우리 선조들의 풍류가 남아 있는 안동과 영주를 느릿느릿 노닐었다.

Writer. 유나리
Photo. 게티이미지뱅크, 한경DB, 한국관광공사

아름다운 산수와 감탄을 자아내는 건축물의 조화, 단아하고 담박한 삶의 태도, 청렴·검소하며 예절을 지키는 것, 명예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이 바뀌지 않는 것, 자연의 아름다운 때를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 지금은 ‘풍류’라는 단어가 우리 국악을 즐기는 의미로 축소됐지만, 본래 조선 시대 풍류는 이처럼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포괄했다. 풍류적 삶을 실천하던 선조의 자취를 찾아 안동과 영주로 향했다.

옛 마을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

풍류 정신 담긴 안동

안동은 ‘선비’, ‘유교’ 등의 수식어로 유명한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당과 서원이 즐비한 교육의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이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도산서원부터 서애 류성룡이 가르치던 병산서원 등 고장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었다. 이황은 벼슬길에 올랐지만 언제나 공부하며 자신을 갈고닦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삶을 위해 택한 곳이 바로 도산서원이다. 세상의 명예나 권력을 좇지 않는, 온전히 배움의 충만함과 가르침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도산서원은 성리학을 꽃피운 공간이자, 학문이 권력이 아닌 자기 수양의 한 방법임을 입증한 곳이다. 그가 성리학자로만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이황은 정신처럼 곧고 바른 글씨로 서예와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글씨는 그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그의 글씨에는 평생 경(敬)을 실천하고 바르게 살려는 성정이 담겨 있다. 조선 시대는 풍류를 삶의 태도, 실천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신적 지향점으로 봤다. 그런 의미에서 서원에 남은 학자들의 올곧은 흔적과 배움을 실천하려고 거듭 수련하는 유생의 고장인 이곳이야말로 풍류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다.

병산서원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사색에 잠기기 좋은 만대루

배롱나무꽃 흐드러진 절경 속에 자리한 병산서원은 국내 서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서원 앞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과 그 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을 볼 수 있는 서원은 학문에 몰두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을 터. 그림 같은 풍경을 어디에 서든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설계됐다. 입교당 마루에 앉으면 만대루를 액자 삼아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할 수 있다. 학문이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닮아야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즐겨야 한다는 선비들의 풍류 정신이 그대로 느껴진다.

병산서원을 나서면 낙동강을 따라 하회마을까지 갈 수 있다. 두 곳을 잇는 4km 남짓한 하회·병산 선비길은 과거 병산서원의 유생이 학문에 대한 고민을 털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걸은 길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딱 필요한 길이다. 낙동강 둑길을 따라 걸으며 부용대에서 하회마을 전경을 내려다보면 마을 이름의 뜻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강물이 S자 모양으로 돌아 내려간다고 해 ‘물 하(河)’에 ‘돌 회(回)’를 썼다. 낙동강 물에 둘러싸인 마을 풍경이 더없이 고즈넉하다. 하회마을은 아름다운 고택과 초가집 등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지만, 이제 현대의 풍류를 덧입었다. 전통 한옥의 안온함에 현대적 서비스의 새것을 자연스럽게 조화한 락고재는 편히 쉬며 풍경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오늘날의 풍류를 제공한다. 하회마을은 여전히 양반들의 뱃놀이인 선유와 줄불놀이 및 탈춤 등이 재현되지만, 만송정에서 치맥 파티와 디제잉 축제도 열린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가무를 즐기며 주변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풍류 문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안동을 돌아보다 보면 기백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혹은 더 중요해진 어떤 원칙을 배우게 된다. 흩어진 마음을 거두고, 사람·사물·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내면에 집중하라. 이황이 도산에서 실천하려던 것은 단순한 학문의 길이 아닌, 인생을 제대로 살려는 법이 아니었을까.

풍산 류씨가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인 안동 하회마을.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거나 탈놀이, 선유, 줄불놀이 같은 양반들의 풍류놀이를 경험할 수 있다.

부석사 안양루에서 볼 수 있는 소백산 절경

안빈낙도의 낭만, 영주

조선 시대엔 건축 공간과 자연경관의 결합이 감탄을 자아내는 것도 풍류의 한 조건으로 봤다. 그런 의미에서 영주의 부석사는 풍류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으며, 유홍준은 “무량수전 안양루에 올라 소스라치는 기쁨과 놀라운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적은 바 있다. 완만한 계단에 석단과 계단을 차곡차곡 쌓아 지은 이 절에 오르면 그들의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삼층석탑 앞에서 일몰을 바라보고, 안양루 용마루 언덕에서 보는 노을은 쉽게 잊히지 않을 장관이다.

소백산 3코스, 비로봉 오르는 길에 있는 희방폭포. 주차장에서 10여 분만 걸으면 닿는다.

유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풍류를 즐기던 소수서원의 경렴정
  

또 다른 명소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임금에게 이름을 받은 공인된 교육기관이다. 이곳에서 학문의 뿌리가 태동한 셈이다. 여유롭게 산책하며 배움의 길을 느껴보기 좋다. 서원에서 차로 15분을 달리면 금선계곡이 나온다. 계곡 입구에 있는 작은 정자인 금선정에 앉아 있으면 답답했던 머리가 일순 비워진다.

신라 시대에 지은 희방사는 소백산을 찾았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 소백산 남쪽 고도 850m에 위치한 이곳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 28m 높이에서 시원스레 쏟아지는 희방폭포가 있는 압도적인 풍류 장소다. 신선이 여기서 쉬었을까?

새소리, 폭포 소리만 가득한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면 일상은 순간 아득해진다. 고요한 비움의 시간, 많은 선비가 영주를 찾은 이유일 터. 서원에서 학문을 닦고, 정자에 앉아 자연과 자신을 사유하며, 풍류의 삶을 한껏 실천하기 위해서. 소박한 삶 속에서 진리를 찾고 자연을 벗 삼아 즐거움을 찾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