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March+April

[LIFE &]What’s Hot

삶의 새로운 기준,
ESG 라이프

남이 버린 쓰레기를 줍고, 무거운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무료 비닐 포장을 사양한다.
이러한 일들을 이제는 유별난 환경 운동가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해나간다.
우리의 일반적 행동 양식이 된 ‘ESG 라이프’에 대하여.

Writer. 한소영

올해 수도권기상청이 발표한 ‘2021년 기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는 이상기후가 계절별로 두루 나타났다고 한다. 연평균 기온은 13.0℃로 1973년 이후 겨울을 제외한 전 계절에 평균기온이 매우 높았고, 이른 더위로 7월 최고 기온은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 높은 기온으로 서울 벚꽃 개화일이 1922년 관측 이래 가장 빨랐고, 5월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내려 강수일수가 역대 가장 많았다. 대기 불안정으로 인한 우박과 뇌전도 잦았다.
세계적 팬데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 사실을 생각하면 우울하기만 한데,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 나쁜 소식 속에서 의기소침해지는 대신 그래도 꾸물꾸물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무거운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음료를 담아 마시고, 거품이 잘 일지 않아 다소 뻑뻑한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 이른바 ‘ESG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 Social・지배 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말로, 원래는 기업 활동에 친환경・사회적 책임 경영・지배 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경영 철학을 담은 말이다.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건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마찬가지여서 ESG 라이프스타일은 개인 삶의 새로운 기준으로도 자리 잡고 있다.

플렉스에서 이제 플로깅

불과 2~3년 전쯤 한국의 젊은 층에서 ‘플렉스한다’란 말이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플렉스Flex란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부를 뽐내는 모습에서 유래한 말로,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MZ세대가 주목하는 단어가 어느새 ‘플렉스’에서 ‘플로깅’으로 바뀐 것이다.
플로깅Plogging은 ‘줍다’라는 의미가 있는 스웨덴어의 ‘플로 카 우프Plocka Upp’와 조깅Jogging을 합친 말로,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을 의미한다. 2016년부터 스웨덴에서 시작된 플로깅은 현재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고 한다. 플로깅은 어쩌다 쓰레기를 한두 개 줍는 것이 아니다. 본격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다. 조깅하러 나갈 때 작은 에코백을 챙겨 조깅하는 동안 눈에 거슬리는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주워오는 것이다. 쾌적한 조깅을 계속 즐기기 위해선 내가 먼저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는 책임감의 발현이다. 이는 21세기 소비자의 새로운 ‘합리적’ 행동 방식이다. ESG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이들은 불편한 일을 자발적으로, 마치 즐거운 일인 양 해나간다. 여행할 때도 최대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각종 용기를 챙기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친환경적 노력을 하지 않는 기업의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소비자의 새로운 ‘합리적’ 소비가 기업을 더욱 친환경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도시의 배관을 활용한 공유 정원

‘봉사 활동’이라기보다 ‘일상’에 가까운,
조깅하는 길에 쓰레기를 줍는 행위인 플로깅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을 안 작은 공동체

그린피스 같은 환경 단체가 플로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이 지극히 사적인 시간에 플로깅을 시작해 작은 모임이 형성되는 식으로 나아간다. 개와 산책하다가 종종 마주치는 동네 사람 몇몇이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문제에 대해 가볍게 불만을 토로하다가 한날한시에 모여 동네에 있는 작은 동산의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기도 한다. 이제는 지자체와 기업들도 이러한 플로깅 모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개인의 공간인 ‘정원’과 서로 나누는 ‘공유’가 만난 ‘공유 정원’도 비슷한 개념이다. 세계 곳곳에서는 자신의 정원을 꾸미는 것을 넘어 도시환경을 위해 공유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작물을 수확해 나누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서로를 발견하고,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룬다. 이렇게 모인 이들이 지구를 위한 활동을 하나둘씩 확장해나간다.

이제는 보통의 일이 된 것들

에른스트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영속성은 아버지 시대에 사치품이었던 것이 우리에게는 필수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약탈적인 태도와 공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삶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해 팬데믹을 현명하게 헤쳐나가고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행동 방식에 차분히 적응해가야 한다. 그 방식이 플로깅이 될 순 있어도 플렉스가 될 순 없지 않을까? 자진해서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이러한 행동 양식이 결국 공동체에 가장 큰 이득을 주고, 그리하여 공동체에 속한 자신에게도 이로운 일이 되는 ESG 라이프. 삶에 영속성을 불어넣는 이 선순환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얘기다. 플렉스가 아닌 플로깅이, ESG 라이프가 보통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PLUSESG 라이프에 도움을 주는 책

<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 민음사

‘아침 식사로 지구 구하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멀고 추상적으로 보이는 기후 변화로 인한 문제를 바로 눈앞에, 마치 아침 밥상 위에 가져다 놓은 듯 각성을 촉구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써나간 매력적인 에세이를 통해 육식이 지닌 문제에 대한 깊은 공감을 끌어낸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의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날씨다>는 작가의 두 번째 논픽션이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본 쉬나드 지음 / 라이팅 하우스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로 유명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쓴 경영철학서다. 이 책이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됐을 당시 경영서로는 이례적으로 아마존 환경 분야 1위를 기록했고, 10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이 괴짜 기업가의 책을 연구 자료로 썼다고 한다.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지금 시대의 기업에도 너무나 유효한, 단연 ESG 분야 베스트셀러다.

<제로 웨이스트 가드닝>
벤 래스킨 지음 / 브.레드

텃밭과 베란다에 농사를 짓는 ‘도시 농부’가 되는 방법과 그 수확물을 남김없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레시피를 알록달록한 일러스트와 함께 담았다. 이 구체적 방법론의 목표는 제목 그대로 ‘쓰레기 없는’ 도시 가드닝. 텃밭을 가꾸는 과정에서도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이 수반된다. 저자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소일 어소시에이트션 Soil Association’에서 영농인 양성 과정을 창설해 유기 농법 이론과 실습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