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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April

[LIFE &]Architecture

건축은 어떻게 도시를 살릴까?

LUMA Tower
in Arles

고흐가 1년 남짓 거주한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이던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이
지난해 새로운 명물을 갖게 됐다.
바로 프랑크 게리가 지은 ‘뤼마 타워’다.

Writer. 유나리

건축물은 도시의 대표적 랜드마크다. 그래서 도시마다 유명한 건축가의 건축물이나 특이한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애쓴다. 그 때문에 가끔 과하거나 기괴한 결과물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 그 역효과는 걷어내고 도시를 아름답게 살린 좋은 사례가 있다.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지은 뤼마 타워LUMA Tower는 쇠락하던 낡은 도시를 단숨에 세계적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뤼마 타워가 있는 도시 아를Arles은 옛 로마 시대의 자취가 많이 남은 인구 5만 명 남짓한 작은 도시다. 이 도시를 알린 것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가 아를에서 1년 반 정도 짧게 머물며 남긴 작품으로 많은 사람이 그의 자취를 좇아 아를을 방문한다. 그 외에 아를을 알리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를은 지금보다 고대에 더 번창한 도시다. 작고 안온한 예술가의 도시는 점차 쇠락해 잊혀가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살리기 위해 나선 사람은 바로 유명한 예술 컬렉터이자 자선사업가 마야 호프만Maja Hoffmann. 그는 시내 남동부의 버려진 철도 시설 부지에 아트 센터 뤼마 아를LUMA Arles을 세우며 아를을 빌바오 같은 새로운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철도 수리 창고 등 대형 창고 건물을 전시 공간, 워크숍 공간, 세미나실, 연구실 등으로 바꾸고 실험적 문화 기지를 구축할 계획을 세웠다. 아를의 재탄생을 알릴 파격적이고 상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기지의 얼굴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릴 메인 타워는 특별해야 했다. 그래서 호프만은 게리와 손잡았다.

대화 중인 프랭크 게리(왼쪽)와 마야 호프만

뤼마 아를 내부 곳곳에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속 작품은 설치미술가 리암 길릭의 ‘Orientation Platforms’ 중 하나

논란과 화제의 스타 건축가, 프랭크 게리

프랭크 게리와 손잡았다는 것은 논란의 중심에 설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게리의 작품은 공개되면 언제나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과 압도적이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호불호가 갈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랜드마크가 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가 건축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직선만 있던 건축에 곡선을 강조한 디자인을 반영하고, 콘크리트 대신 티타늄을 새로운 건축자재로 도입하며 고정관념을 부숴왔다. 하지만 그가 화제성만을 좇아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골판지를 60겹으로 쌓아 구부려 의자를 만들고, 베니어판・ 체인・금속판 등의 폐자재를 활용해 헌 집을 살려 ‘게리 하우스’를 지으며 익숙한 것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또한 기존 상식과 질서에 반하며 새로운 것을 찾는 실험 정신으로 건축의 가능성을 넓혀왔다.
그래서 그가 설계한 건물은 보기만 해도 그의 손길이 닿은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장소에 자신의 스타일을 맞추는 건축가가 있는 반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지은 자하 하디드처럼 어디에 있건 자신의 디자인을 고수하는 건축가도 있다. 프랭크 게리는 후자에 속한다. 그가 지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로스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서울의 루이 비통 매장 등을 떠올려보자. 형태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운 외관과 반짝이는 소재들. 그는 그곳이 어디든 자신의 작품으로 도시의 풍경을 단박에 바꾼다.

알루미늄 패널로 바위산의 거친 느낌을 형상화한 뤼마 타워 외관. 인근에서 운행하는 운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알루미늄은 특수 코팅했다.

뤼마 타워가 버티고 선 뤼마 아를 전경. 약 11만㎡에 달하는 부지에 레노베이션 한 대형 창고형 건물 6개 동, 호수를 포함한 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아를의 명소를 재해석한 21세기 바위산

그렇다고 그가 맥락 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풀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는 건물이 지어질 곳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스타일로 풀어낼 뿐이다.
프랭크 게리는 이번에도 뤼마 타워를 구상하기 전 먼저 아를을 면밀히 살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물은 무엇일까. 그는 남아 있는 세 가지 유산을 보물로 여기고 설계에 반영했다. 바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느껴지는 거친 듯 유려한 붓질과 아를 지역의 바위산, 아를의 또 다른 명소인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이다. 일견 어울리지 않고, 다소 평범해 보이는 이 조합을 어떻게 결합했을까. 그는 특유의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바위산의 거친 산맥을 형상화하고, 알루미늄 패널 1만1,000여 개를 불규칙하게 붙여 별처럼 빛나는 뤼마 타워를 완성했다. 또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의 형태를 본떠 타워 하단을 원형의 유리 아트리움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짓는 데 무려 7년이 걸렸다. 완성된 타워는 호수와 여러 채의 건물이 있는 넓은 뤼마 아를의 입구를 당당히 지킨다.

뤼마 타워에는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는 스웨덴 예술가 카르스텐 휠레르의 아이소메트릭 슬라이드가 영구 설치되어 있다.

곡선미가 아름다운 뤼마 타워 내부

자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관이지만, 내부는 좀 다르다. 호프만은 뤼마 아를을 만들 때 지역 특색을 살린 자연 친화적 면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 그래서 타워 내부에 소금, 해초, 쌀 등 지역을 대표하는 자연물로 만든 내장재를 사용했다. 로비를 장식한 4,000여 장의 소금 패널은 타워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2014년부터 무려 7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지난해 여름 56m의 뤼마 타워가 완공되자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일부 평론가는 “압도적인 스테인리스스틸 토네이도 같다”며 찬사를 보냈고, 일부 평론가는 “구겨진 알루미늄 캔 같다”고 혹평했다. 프랭크 게리의 작품다운 결과다.
논란을 뒤로하고 타워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빛을 발산하며 도시 중심에 우뚝 서 있다. 낮에는 은빛, 밤에는 금빛을 띤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암석 바위가 서 있는 듯하다. 이렇게 야트막하고 오래된 건물만 있던 도시의 조용한 풍경에 극적인 방점이 찍혔다. 단순히 풍경만 바뀐 것이 아니다. 타워 완공과 함께 출판, 아틀리에, 페스티벌 등이 뤼마 아를로 자리를 옮기며 자연스레 도심 일대의 문화 예술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뤼마 타워는 아를의, 유럽의 또 다른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원형경기장을 형상화한 유리 스타디움이 타워 하단을 둘러싸고 있다.

스틸 소재의 다양한 재료를 조합해 아름다운 레이어를 완성한 뤼마 타워 내부.


건설 중인 뤼마 타워
뤼마 타워가 완성되기까지의
영상을 감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