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View
It’s my pleasure!
여기, 아주 통 크게 모두를 위해 자산을 나눈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예술, 공공의료,
교육 등 인간의 안과 밖을
살찌우는 데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Editor. 유나리
Photo.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게티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언스플래시, 한경DB
메트로폴리탄은 매년 미술관 의상연구소 운영 자금 마련과 연례 전시회 개막을 기념해 1948년부터 대규모 모금 행사인 ‘멧 갈라’를 개최하며 기부의 명맥을 잇는다.
메트로폴리탄은 매년 미술관 의상연구소 운영 자금 마련과 연례 전시회 개막을 기념해 1948년부터 대규모 모금 행사인 ‘멧 갈라’를 개최하며 기부의 명맥을 잇는다.
① 예술 나눔의 시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국에서 가장 큰 미술관으로, 300만 점 이상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이 남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철저하게 민간인의 ‘기증’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1866년 미국 독립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미국인들이 “이제 우리도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같은 미국 대표 미술관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나”라며 십시일반 기부금과 기증품을 모아 만들었다. 왕실 보관품이나 제국주의 시대 약탈품을 버젓이 걸어둔 미술관과는 시작과 의도, 소장품부터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1870년 문을 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일명 ‘더 멧 The Met’은 미국이야말로 대중이 수준 높은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줬고, 뉴욕을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리처드 마이어가 12년에 걸쳐 완성한 게티 미술관. 약 1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산꼭대기까지 찾아올 가치가 있는 미국의 명소로 만들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리처드 마이어가 12년에 걸쳐 완성한 미술관. 약 1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산꼭대기까지 찾아올 가치가 있는 미국의 명소로 만들었다.
② 억만장자가 남긴 미술 낙원
진 폴 게티-게티 미술관
Getty Museum
미국 최대 석유 재벌이던 진 폴 게티 Jean Paul Getty, 1892~1976는 다른 영역에선 소문난 구두쇠였지만, 미술품은 광적으로 수집했다. 20대 초 이미 막대한 부를 거머쥔 그는 LA에 게티 빌라 Getty Villa와 게티 센터 Getty Center라는 2개의 보석 같은 미술관을 남겼다. 사망 후에도 7억 달러가 넘는 유산을 미술관에 기부하고, 소장품과 부동산 등을 모두 게티 재단 Getty Foundation에 넘겼다. “지구가 멸망해도 게티의 수장고만 무사하다면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쓸 필요가 없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이 말은 결코 허황된 수사가 아니다. 재단은 미술뿐 아니라 출판, 음악, 예술교육 등 전 세계 예술가와 연구자 간 네트워크를 만들어 레지던시와 연구비 등을 지원하며 인류가 새로운 역사를 쓰도록 지속적으로 돕는다.
③ 현대미술의 수호자
페기 구겐하임-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예술을 사랑한 대표적 자선가 중 한 명이자 현대미술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페기 구겐하임 Peggy Guggenheim, 1898~1979이다. 광산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구겐하임 가문 출신인 페기는 아버지가 타이태닉호 침몰로 사망한 이후 예술에서 마음의 울타리를 찾았다. 페기는 당시 예술이 부흥하던 파리를 찾아 뒤샹 등 현대미술 작가와 친구가 됐고, 피카소·브랑쿠시 등의 작품을 접하며 안목을 키워나갔다. 나치 집권기에 미로, 칸딘스키, 마그리트, 피카소 등의 걸작 170여 점을 사들인 후 미국으로 들여오며 나치로부터 작품을 보호했다. 또 잭슨 폴록에겐 생활비를 대주며 작업 활동을 후원해 추상미술이 꽃피게 했다. 이후 페기는 자신이 평생 지키고 경험해 온 예술이 사라지지 않도록 삼촌이 설립한 구겐하임 재단에 소장품을 기증했다.
1959년에 지은 구겐하임 미술관은 근대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 미국 근대건축물로는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앤드루 카네기가 기부해 지은 미국 각지의 공공 도서관들
④ 누구나 읽을 권리가 있다
앤드루 카네기-카네기 재단
Carnegie Corporation of New York
앤드루 카네기 Andrew Carnegie, 1835~1919, 찢어지게 가난한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로 철강 왕 자리에 오른 사람. 그는 어린 시절 책 400여 권을 소장한 이웃집에서 토요일마다 책을 빌려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엿봤다. 이때의 경험은 “마치 감옥 벽에 열린 창문 틈으로 지식의 빛이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이것이 전성기 시절 인류 역사상 세 번째로 그러모은, 자본주의의 화신 같은 그가 ‘도서관의 수호성인’이라 불리며, 에세이를 통해 “부자가 가진 여윳돈은 사회가 잠시 맡겨둔 것이며, 그 돈은 살아 있는 동안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쓰여야 한다”라는 말을 남긴 이유가 아닐까. 그는 인생 말년인 1901년 회사를 매각한 뒤 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인 사회사업을 시작하며 다른 행보를 보였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교육. 1881년 이미 스코틀랜드 덤프리스에 도서관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재단을 통해 전 세계 2,509개의 공공 도서관을 건립하는 데 약 5,600만 달러(830억 원)가 넘는 돈을 기부했다. 그는 빈곤 문제를 줄여주는 일시적 정책 대신 불평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제도로 보완하는 구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카네기 재단은 미국의 공공 도서관 건립,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 저소득층 대학생을 돕는 장학금, SAT 시험 등 상관없어 보이는 프로그램과 제도 재정을 후원했다. 현재까지 약 45억 달러(6조 원)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며, 해마다 1억 7,000만 달러 (2,517억 원)가 넘는 자금을 집행하는 미국 대표 사적 재단으로 자리 잡았다.
⑤ 전 세계 빈곤과 질병퇴치 보건 향상이 목표
빌 게이츠-게이츠 재단
Gates Foundation
경제성장과 함께 인류는 전반적 교육과 복지 인프라를 높이는 데 성공했지만, 또 다른 그늘을 만들어냈다. 바로 빈민국이라는 소외된 나라의 어린이, 여성 등 아주 짙고 어두운 그림자 안에 있는 존재들. 세계 최대 부호 중 하나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Bill Gates, 1955~는 ‘부자로 죽지 않겠다’는 다짐 아래 전 세계 열악한 보건과 교육, 기후변화, 빈곤 등 자본주의의 다양한 그림자와 싸운다. 이제까지 세계 보건 향상을 목표로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과 함께 글로벌 펀드 설립 등을 지원하며 11억 명의 아동에게 필수 백신을 제공했다. 앞으로 20년간은 치명적 전염병의 완전 퇴치, 예방 가능한 원인으로 인한 아동·임산부 사망 방지 등에 집중할 예정이다. 또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 농업, 디지털 인프라 등을 활용한 연구 개발을 지속한다. 빌 게이츠는 전 세계적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부자가 더 빠르게 기부해야 한다”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며 연대도 재촉한다.
빌 게이츠는 2045년까지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모두 소진해 가난한 나라의 질병 퇴치를 약속했다. 게이츠 재단은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공급하는 비영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빌 게이츠는 2045년까지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모두 소진해 가난한 나라의 질병 퇴치를 약속했다. 게이츠 재단은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공급하는 비영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도심 속 새하얀 벌집으로도 일컫는 브로드 미술관은 특히 제프 쿤스,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을 독립된 갤러리에 전시할 만큼 현대미술 작품이 풍성하다.
⑥ 문화로 도시 얼굴을 바꾼 LA의 메디치
일라이 브로드-브로드 미술관
The Broad
건설업과 보험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억만장자 일라이 브로드 Eli Broad, 1933~2021는 LA의 얼굴을 바꾼 ‘LA의 메디치’로 일컬어진다. 5년 이상 건축이 멈춰 도시의 흉물이 되어가던 디즈니홀 건축을 위해 집요하게 모금 운동을 펼쳤고, LA 현대미술관 MOCA과 LA카운티 뮤지엄 등 다양한 미술관 건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LA 오페라가 바그너의 ‘링 사이클’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600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그는 문화의 불모지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화시설을 다수 만들며 한 도시의 문화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열정적 수집가이기도 했던 그는 1984년 브로드 미술 재단을, 2015년엔 소 장품을 전시한 현대미술 갤러리인 더 브로드를 설립했다. 1999년엔 교육 재단을 세우며 공교육 발전을 지원했고, UCLA나 하버드 등 유수의 대학에 연구 자금도 지원했다. 부자의 사회적 책임에도 관심이 많았다. 2019년엔 기고문에 “나는 1%에 속하는 사람이다. 제발 나의 세금을 인상해달라”고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