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IOR&]Local Tour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 경주
11월, 천년 고분과 왕궁터 및 트렌디한 카페가
공존하는 경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바로 APEC 정상회의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의는
무려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열리는
국제 행사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한국과 세계를 잇는 가교가 될 경주의 가을을 들여다봤다.
Writer. 박소윤
Photo. <SRT 매거진>
눈부신 신라의 달밤
동궁과 월지
경주의 하루는 유독 길다. 멋진 야경 포인트가 산재해 해가 진 뒤에도 여행이 계속되기 때문. 야경의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동궁과 월지다. 신라 왕궁의 별궁 터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가 열리던 곳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든다’는 뜻에서 ‘안압지’라 불렀으나,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가 발굴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동궁과 월지는 경주 야경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전각과 석축을 비추는 조명이 그리는 데칼코마니 풍경이 황홀함을 선사한다. 동궁과 월지 맞은 편에 있는 월성 해자는 신라 시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됐다. 땅의 생김새가 초승달과 같다 해서 ‘반월성’이라 불렀다. 830여 년간 왕궁으로 존재하며 신라의 흥망성 쇠를 지켜본 반월성과 이를 둘러싼 해자의 진가는 해가 진 뒤 드러난다. 해자 위로 어둠과 빛이 고요히 녹아들면 월성은 그 옆을 묵묵히 지킬 따름이다. 하늘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해자가 사뭇 몽환적이다. 해자의 끝과 끝을 거니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 월성을 뒤로하고 조금만 더 걷다 보면 반짝이는 다리 하나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원효대사와 요석 공주의 사랑이 깃든 월정교다. 원효대사가 파계를 각오하고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오랜 시간 고증을 거쳐 지난 2018년 1,300여 년 전 모습으로 복원됐다. 오색단청과 붉은 기둥을 품은 월정교는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가까이서 보면 웅장하면서도 단아하다. 밤이 깊어도 변함없는 반짝임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 동궁과 월지 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보문관광단지 전경.
2025년은 보문관광단지가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경주, 세계를 품다
보문관광단지 & 경주화백컨벤션센터
2024년 6월, 경주 전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APEC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개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1989년 창립된 APEC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 협력체로, 한국·미국·중국·일본·호주·싱가포르·멕시코·페루 등 21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매년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환태평양 연안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다자 외교 행사다. 전 세계 경제 리더가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 행사인 만큼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개최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2005년 부산에 이어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APEC 정상회의라는 점도 무척 고무적이다. 경제 활성화 효과 역시 톡톡할 전망이다. 경상북도는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전국적으로 1조8,000억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 주무대는 국내 최초의 관광단지인 보문관광단지다. 1970년대 우리나라 관광 개발의 시작을 알린 출발점이자 경주 관광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푸른 보문호를 중심으로 약 808만6,000m²(240만여 평)의 드넓은 부지에 조성된 종합 관광 휴양지로 호텔, 컨벤션 센터, 레저·휴양 시설 등이 들어서 여행객에게 필수 코스로 꼽히며 경주 여행의 거점으로 삼기 좋다. 싱그러운 자연을 한껏 느끼고 싶다면 보문호를 따라 이어진 보문호반 길을 추천한다. 시간에 따라 벚꽃, 단풍 등으로 옷을 갈아입는 가로수를 눈에 담으며 깊어가는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 인근에는 2025년 APEC 정상회의 주 회의장인 경주화백 컨벤션센터 HICO가 자리한다. 전시·페스티벌·박람회·학술 회의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연중 펼쳐지는 경주 문화 예술 인프라의 집합체로, 다양한 행사·숙박·관광을 한곳에서 누릴 수 있다.
🝯 보문관광단지 경북 경주시 신평동
🝯 경주화백컨벤션센터 경북 경주시 보문로 507
도심 곳곳에 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알리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자리한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2025년 APEC 정상회의 주 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유네스코 세계유산 불국사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에 자리한 솔거미술관
전통과 현대가 빚어내는 대비
경주엑스포대공원 & 불국사
내남사거리에서 시작하는 황리단길은 경주에서 가장 젊은 길로 꼽힌다. 여기에 최근 MZ세대의 발길이 향하는 장소가 한 곳 추가됐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이다. 1988년 국제박람회를 계기로 조성된 엑스포대공원은 현재 전시·체험·공연 등 다양한 경험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82m의 아찔한 높이와 중심부가 뻥 뚫린 파격적 설계가 돋보이는 경주타워는 경주엑스포대공원의 상징이다. ‘탑을 품은 건물’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낸 이는 재일 한국인 건축가 고故 이타미 준(한국 이름 유동룡). 사라진 황룡사9층목탑을 되살리고자 하는 그의 뜻이 중심 공간에 담겼다. 꼭대기 층인 전망대에서는 보문호를 중심으로 자리한 보문관광단지, 경주월드 등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념관도 놓칠 수 없다. 현무암을 이어 붙이듯 쌓아 올린 독특한 외관은 주상절리에서, 건물 전체를 덮은 황금빛 격자와 3개의 언덕 형상은 각각 신라 금관과 고분을 상징한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백미는 솔거미술관이다. 과거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의 작품 830여 점이 이곳에 소장돼 있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이 현대 문화의 상징이라면, 불국사는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 시절 수학여행 단골 장소로, 학창 시절 교과서로 수없이 접 해 지겨울 법도 한데,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운 자태는 마주할 때마다 새롭다. 불국사의 템플스테이는 숙박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대웅전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벗 삼아 걸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 경주엑스포대공원 경북 경주시 경감로 614
🝯 불국사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7세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로 추정되는 황룡사9층목탑을 본떠 만든 경주타워
황남대총과 목련이 어우러진 대릉원 포토 존
뚜벅뚜벅, 천년의 길
경주대릉원 & 첨성대
경주에서라면 따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걸어도 좋다. 발 닿는 어느 곳이든 문화 유적지가 펼쳐진다. 황리단길을 따라 여행을 시작해 본다. 아기자기한 소품 숍, 원두 향이 그윽한 카페를 기웃거리며 10분가량 걷다 보면 경주대릉원 정문이다. 경주대릉원은 노동동과 황남동 사이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을 통칭한다. 황남대총, 봉황대, 금관총, 천마총 등 크고 작은 신라 시대 무덤 23기가 밀집해 있다. 넓은 고분 공원 안에서도 유독 사랑받는 공간이 있으니 황남대총 뒤쪽에 심은 목련 앞이다. 부드러운 쌍곡선의 황남대총 사이에 뽀얗게 핀 목련 앞은 이곳에서 제일가는 포토 존이다. 꽃이 피는 봄에만 붐비는 것이 아니다. 짙은 초록을 지나 빨간 단풍, 하얀 눈꽃으로 옷을 갈아입는 사계절 내내 카메라에 비경을 담는 이들로 길게 줄이 늘어선다. 경주대릉원 정문을 지나 길 하나만 건너면 첨성대가 너른 벌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명실상부 경주의 랜드마크이자 국보다. 오후 햇살을 받은 첨성대는 유심히 들여다볼수록 신비롭다. 압도적 규모는 아니지만, 위로 갈수록 오묘하게 좁아 드는 곡선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천년의 신비를 탐닉하듯 한참을 그 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이도 여럿이다. 첨성대 뒤편에 서면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 울창한 숲 하나가 존재감을 뽐낸다.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경주계림이다. 신라 탈해왕 때 닭이 숲속에서 운 뒤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에 근거해 ‘닭이 운 수풀’이란 뜻의 이름이 붙었다. 한때 신라의 국호마저 계림이라 쓸 만큼 유서 깊고 신성한 숲이다. 왕버들·느티나무·단풍나무 등 고목이 하늘을 가릴 듯 울울창창해 산책하기 좋고, 이른바 ‘사진발’도 잘 받는다.
🝯 경주대릉원(매표소) & 첨성대 경북 경주시 계림로 9
🝯 경주계림 경북 경주시 교동
첨성대는 신라 시대에 건립된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