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 ]상식의 틀을 깨는 건축 스튜디오 ⑥
빛과 그림자의 언어로 공간을 설계하는 스튜디오
아틀리에 장 누벨
Ateliers Jean Nouvel
아틀리에 장 누벨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이끄는 세계적 건축 스튜디오다.
그는 빛과 문화적 맥락을 통해 공간의 정체성을 구축하며 현대건축의 흐름을 바꿨다.
Writer. 두경아 Photo. Ateliers Jean Nouvel
외벽의 약 50%가 수직 정원으로 덮여 있는 원 센트럴
파크
이미지, 색채, 빛으로 가득한 공연장 덴마크 라디오
심포니 홀
1994년 설립한 아틀리에 장 누벨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이 이끄는 세계적 건축 스튜디오다. 장 누벨은 현대건축의 흐름을 선도한 대표적인 거장으로, 형태를 만드는 것을 넘어 빛·기후·문화적 맥락을 통해 공간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프랑스 퓌멜 Fumel 출신으로, 보자르 미술학교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이후 건축가 클로드 파랑 Claude Parent과 도시 이론가 폴 비릴리오 Paul Virilio가 운영하는 아틀리에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197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축 사무소를 설립했다. 그는 건축가들의 폐쇄적 조직 문화를 비판하며 프랑스 건축 운동 ‘Mars 1976’을 주도했고, 건축 조합을 결성해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 중심의 건축, 시민 참여형 도시계획 등을 주장했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와 사회적 관점은 그의 작품 전반에 깊이 스며 있다.
그는 1987년 ‘아랍 세계 연구소’로 주목받기 시작해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물 ‘아그바르 타워’, 파리의 ‘까르띠에 미술관’ 등을 선보이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그는 ‘빛의 장인’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통한 환상적 분위기의 건축물을 만들어낸다. 아랍 세계 연구소는 전면에 설치된 기계식 셔터로 빛의 양을 조절하는 혁신적 디자인을 선보였고, ‘루브르 아부다비’는 ‘빛의 비 Rain of Light’라는 콘셉트로 돔형 지붕을 통해 빛을 산란시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2001년 영국왕립 건축가협회 RIBA 로열 골드 메달, 2006년 국제 고층 건물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건축계의 최고 영예인 프리 츠커상 Pritzker Prize을 받으며 세계적 영향력을 확고히 했다. 아틀리에 장 누벨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청담동 돌체앤가바나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계했으며, 2024년 파리 올림픽 기간에는 삼성과 협업해 파리에 ‘삼성 올림픽 체험장’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KKL Luzern, Switzerland
아름다운 루체른 호숫가에 자리한 KKL 루체른 문화 컨벤션 센터
호수를 품은 복합 문화 센터
KKL 루체른 문화 컨벤션 센터
스위스의 중심부, 루체른 호숫가에 자리한 루체른 ‘문화 컨벤션 센터’는 장 누벨의 철학이 담긴 복합 문화 공간이다. 탁월한 음향으로 명성을 얻은 콘서트홀을 중심으로 밝고 넓은 테라스와 로비 및 전시 공간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은 복잡한 부지 조건 속에서도 주변 환경과 완벽히 어우러지는 현대건축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호수’였다. 건물이 호숫가를 침범할 수 없다면, 반대로 호수가 건물 쪽으로 스며들게 하자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건물의 중심축은 호수에서 멀리 떨어져 배치하고, 콘서트홀과 콘퍼런스 센터 등 주요 공간은 호수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설계했다. 이들 사이의 1층 공간은 수로로 나뉘어 있으며, ‘물의 정원’으로 설계해 다리로 연결된다. 모든 요소는 높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색 경사 지붕 아래 하나의 유기적 체계로 통합된다. 중앙의 작은 콘서트홀은 완전히 개방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바로 그 아래 위치한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도시와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지붕 아래의 회색빛 청람색 패널은 루체른 호수, 도시, 산악 풍경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KKL Luzern, Switzerland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도시와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KKL Luzern, Switzerland
1층 공간은 수로로 나뉘어 있으며, 물의 정원으로 설계해 다리로 연결된다.
©Roland Halbe
건물 외벽을 수직 정원으로 조성한 원 센트럴 파크
시드니 스카이라인을 바꾼 녹색 수직 정원
시드니 원 센트럴 파크
시드니 도심에 자리한 ‘원 센트럴 파크’는 34층과 12층 2개 타워가 하단의 공용 건물로 연결된 주거 복합 건물이다. 외벽의 약 50%가 프랑스 식물학자이자 조경 예술가인 파트리크 블랑 Patrick Blanc과 협업해 만든 수직 정원으로 덮여 있다. 이 정원은 인근 시립공원을 수직으로 확장한 듯한 조경 개념으로, 도심 속에서도 녹색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그린 아이콘’을 완성한 것이다.
수직 정원은 단순한 조경 요소를 넘어 계절에 따라 햇빛의 양을 조절하는 자연적 차양 장치 역할을 한다.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겨울에는 최대한의 일조량을 확보해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각 세대는 시드니의 온화한 기후를 반영해 실내외가 자연스럽게 이어 지는 로지아(실내형 발코니) 구조로 설계되어 야외 생활공간이 한층 넓어졌다.
북쪽과 동쪽 외벽의 로지아는 소음·바람·햇빛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하기 위해 파사드 안쪽에 배치했고, 남쪽과 서쪽 외벽의 로지아는 파사드 밖으로 확장해 공원 전망을 극대화했다. 건물 상단에는 거대한 캔틸 레버 구조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입주민 전용 라운지와 전망 테라스가 자리한다. 여기에 부착된 태양광 반사 장치 Heliostat는 햇빛을 모아 그늘진 공원을 비추며, 밤에는 조명으로도 활용한다.
©Roland Halbe
태양광 반사 장치는 햇빛을 모아 그늘진 공원에 빛을
보내는 역할을 한다.
©Roland Halbe
시드니의 온화한 기후를 반영한 로지아 구조로, 실내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장 누벨은 사디야트섬의 독특한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루브르 아부다비를 설계했다.
빛이 비처럼 내리는 돔형 지붕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의 도시 Museum City’라 일컫는 루브르 아부다비는 2007년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 UAE의 정부 간 협정을 통해 탄생한 아랍권 최초의 종합 박물관이다.
장 누벨은 사디야트 Saadiyat 섬의 독특한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모래와 바다, 그늘과 빛이 교차하는 미개발의 석호(라군) 섬은 그의 설계 개념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고대 아라비아의 관개 시스템인 ‘팔 라즈 Falaj’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박물관 곳곳을 가로지르는 수로 시스템을 설계했다. 이 물길은 건물 안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면서 공간 전체에 생명감을 불어 넣는다.
루브르 아부다비의 상징인 거대한 돔은 전통적으로 지붕 재료로 사용해 온 야자수잎을 엮은 모양에서 모티브를 얻은 기하학적 레이스 구조다. 그 결과 돔 아래에는 사막의 햇살을 산란시켜 신비로운 ‘빛의 비’를 만들어 냈다.
이 돔은 외부 5겹, 내부 5겹, 총 10겹의 금속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일한 기하학 패턴이 서로 다른 크기와 각도로 반복되어 복잡하고 정교한 입체감을 형성한다. 그 결과 거대한 돔은 마치 얇은 레이스처럼 가볍고 섬세하게 보이며, 시간에 따라 빛과 그림자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상적 공간을 완성했다.
야자수잎을 엮은 모양에서 모티브를 얻어 기하학적
레이스 구조를 완성했다.
얇은 레이스 같은 지붕은 빛과 그림자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상적 공간을 만든다.
©Iwan baan
카타르 건국의 아버지 셰이크 자심 빈 무함마드 알 타니의 복원된 옛 궁전터 위에 들어선 카타르 국립박물관
옛 궁전을 둘러싼 사막 장미
도하 카타르 국립박물관
도하 코르니시 남쪽, 카타르 건국의 아버지 셰이크 자심 빈 무함마드 알 타니의 복원된 옛 궁전터 위에 장 누벨이 설계한 카타르 국립박물관이 들어섰다.
장 누벨은 카타르의 역사와 지질학적 특성을 반영해 설계를 구상했다. 영감의 원천은 사막의 토양 속에서 광물이 결정화될 때 형성되는 자연 조형물 ‘사막의 장미 Desert Rose’였다. 그는 이를 “자연이 만들어낸 최초의 건축 구조물”이라 부르며, 이 유기적 형태를 현대건축 언어로 재해석했다.
박물관은 서로 다른 직경과 곡률을 지닌 수많은 원반이 맞물려 복잡한 구조를 이루는 형태로 설계됐다. 일부 원반은 수직으로 지지대를 형성하고, 다른 일부는 수평으로 다른 원반 위에 놓아 옛 궁전을 마치 목걸이처럼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중앙 안뜰인 바라하는 갤러리들 사이에 자리 잡아 야외 문화 행사와 모임 공간으로 활용된다.
외관은 모래색 콘크리트로 마감해 사막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마치 땅에서 자라난 듯한 인상을 준다. 내부에서도 서로 맞물리는 원반 구조가 이어져 다양한 각도와 높이의 볼륨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돌출된 원반은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어내 건축 미학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Iwan baan
박물관은 사막의 장미에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Iwan baan
©Iwan baan
서로 다른 직경과 곡률을 지닌 수많은 원반이 맞물려 복잡한 구조를 이루는 형태다.
서로 다른 직경과 곡률을 지닌 수많은 원반이 맞물려
복잡한 구조를 이루는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