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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AUGUST

[SPECIAL THEME]Pick

살아볼까요, 이들처럼

아직 뉴 노매드의 삶을 살 자신이 없다면, 미리 예습해보는 것도 좋다.
영화와 코믹스, 서적에서 찾은 뉴 노매드의 삶.
그러나 당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를 수 있으니 주의할 것.

Writer. 유나리

이게 정말 자아 찾기로 보이나요?
MBC 스페셜
<요즘 것들 집을 버리고 세상을 찾다>
2019년

요즘은 뉴 노매드족이 왜 탄생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다루는 TV 프로그램이 제법 많은 것 같다. ‘집을 버리고 세상을 얻은’ 부부, 캠핑카에 둥지를 틀고 매일 여행을 떠나며 사는 30대 청년, 1년 중 반은 한국에서 반은 외국에서 일하며 디지털 노매드족으로 사는 사람까지. ‘뉴 노매드족’ 하면 떠올릴 만한 대표적 삶의 양상을 다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본 이들의 삶이 마냥 낭만적이진 않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일할 곳을 끊임없이 찾아다녀야 하는 불안정함을 드러내고, 캠핑카에 터전을 잡은 건 그만큼 집을 얻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 모든 삶의 양식이 어려워진 젊은이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탄력적인 고용 형태, 이동 가능한 주거 등은 사실 장점이 아니라 감당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온전한 자기 공간을 소유하는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로그램은 무겁지 않지만 뉴 노매드의 삶을 낭만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볍게 ‘쿨하다’는 말로 넘길 수 있는 삶은 없으니까.
가까이서 본 삶엔 여지없이 희극 아닌 비극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이런 불안정성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누구보다 견실하게 둥지를 꾸리는 동력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희망이라는 것. 이 희망이 헛되지 않게, 더 지치지 않게 우리 사회가 뉴 노매드를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나만의 속도를 찾기 위한 성장통
<리틀 포레스트>
2018년 작, 임순례 감독

시골로 훌쩍 떠나 농사를 지으며 밥을 해 먹고 사는 주인공의 삶을 보고 오해하기 쉽지만, 영화는 ‘귀농’이나 ‘힐링’을 다루지 않는다. 오해받기 쉬운 이 영화의 형편은 요즘 뉴 노매드를 대하는 기성세대의 얄팍한 시선과 닮았다. 오랜 임용 고시 수험 생활과 남자 친구의 무심함에 지쳐 고향에 내려온 혜원은 고향 친구들과 재회해 정겨운 시간을 보내지만 도시에서 해결하지 못한 고민을 그대로 안은 채 살아간다.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에 살면 고민이 없을까. 혜원의 친구 은숙은, 도시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는 시골에서의 일상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탈주를 꿈꾸는, 도시에서의 삶을 꿈꾸는 은숙에게 뉴 노매드의 삶은 허상일 뿐이다. 무엇보다 혜원에게 고향은 어머니가 남긴 삶의 질문이 남아 있는 곳이다. 어느 날 훌쩍 딸을 두고 떠난 엄마가 언젠가 혜원에게 알려주겠다고 남긴 것은 바로 감자빵 레시피였다. 혜원은 씩씩하게 감자빵을 빚으며 과거의 엄마와 자신,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화해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누구든 언젠가는 떠나야 할 자신의 방이 있다. 혜원도 언젠가는 고향 집을 떠나 자신의 자리를 찾을 것이다. 혜원의 엄마가 그랬듯이. 혜원의 엄마에겐 이 고향이, 혜원이 떠나온 도시 같은 곳이었을지 모른다. <리틀 포레스트>는 뉴 노매드족에게 꼭 필요한 것 한 가지를 상기시켜준다. 내면의 힘을 길러 자신의 문제와 직면하지 않으면 어디건 다 똑같다는 것을. 물론 이 귀여운 시골집이 그 힘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힐링 대신 철저하게 서투른 자신을 마주할 각오를 하고 떠날 일이다.

진짜 삶 이야기
<노매드랜드>
2020년 작, 클로이 자오 감독

이 영화를 보기 전 캠퍼밴을 타고 다니며 자연을 만끽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요즘 뉴 노매드의 삶을 생각했다면, 아쉽지만 틀렸다. 집 없이 떠도는 삶, 길로 내몰린 삶이 어떤 것인지 가감 없이, 그러나 잔잔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노매드랜드>다.
펀은 세계 금융 위기로 실직하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 결국 혼자가 된다. 그 시기 사람들의 삶은 비슷했다. 금융 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실직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 학교도 없어지고 동네 우편번호까지 사라졌다. 바람에 휩쓸리듯 모든 삶의 기반이 무너지던 때, 펀은 밴을 한 대 사서 먹고 자며 떠돌다 자신처럼 밴을 타고 캠핑하며 사는 노매드족을 만난다. 자본주의 사회질서에서 자의든 타의든 떨어져 나온 이들의 무리다. 영화는 그렇게 노매드의 삶을 살게 된 펀과 펀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잔잔하게 좇는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압도적 풍경이 고요하게 펼쳐지지만 수시로 남편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펀. 펀은 과거 남편의 사진을 보며 현재를 견딘다.
영화는 큰 스토리 없이 전개된다. 마치 알고 보면 우리 삶이 그렇지 않냐는 듯이 말이다. 어디에서건 삶은 지루하게 흐르고 우리는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노매드 라이프를 통해 경험하며 펀은 현재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떠도는 이 삶을 계속하기로 한다. 노매드족의 삶이 녹록하지도,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정확하게 현재를 살기로 결심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 펀의 모습은 따라나서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귀농은 틀렸다!
<불편하고 행복하게>
글·그림 홍연식, 재미주의 펴냄

작가가 자기 경험을 담아 그린 귀농 에세이 만화. 만화는 농촌 생활이 당신의 생각보다 고되다는 것을, 힐링이 아닌 새로운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린다.
도시에서 빠듯한 삶을 이어가던 만화가와 동화책 작가인 아내는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서울 생활에 지쳐 시골행을 결정한다. 만화가이니 어디서든 작업을 할 수 있고, 힘든 시절도 굳건히 버텨온 둘이 함께라면 어디건 괜찮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환경을 바꿔 마음을 환기하고 새로운 영감으로 작품 활동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막상 들어온 시골은 녹록지 않다. 산행객들은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차를 주차하는 등 무개념 행동을 일삼고, 해 떨어지면 아무도 없는 외진 위치에 하루가 멀게 손 볼 곳이 생기는 낡은 시골집은 그들에게 안락함 대신 불편함과 불안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시골 생활이 좀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만화가는 작품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공연히 시골 환경 탓을 한다. 그러다 아내 탓도 하기에 이른다. 둘만 있으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것 같던 시골 생활은 도망가고 싶은 현실이 되고 만다.
2년간의 귀농 생활을 여과 없이 담아낸 이 만화는 내 마음이 바로 서 있지 않다면, 내 마음의 번뇌가 여전하다면 어디를 가건 똑같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신을 넘어설 힘도 자신안에 있다는 것과 함께. 풀리지 않는 작품을 붙잡고 끙끙대면서,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온갖 문제에 부딪히며 작가는 보잘것없는 자신을 냉혹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만화 초반부에서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는 작가는 이런 독백을 한다. “30년간 살던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순전히 나의 선택인 건지,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모습인지 모르겠다”고. 떠나는 사람들은 유독 왜 떠나는 건지, 그 이유가 실패는 아닌지에 집착한다. 2년간의 시골 생활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오기로 한 작가 부부의 모습을 보면 그 질문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새로운 곳으로 떠날 준비는 됐지요?”라고 서로에게 묻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어디건 ‘서로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역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겐 어딘가 믿을 구석이 있어야 한다. 누구도 정말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 그들은 이제 어디에서건 괜찮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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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틀을 깨고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는 다양한 뉴 노매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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