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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AUGUST

[ WEALTH & ]Investment

약세장의 주식시장
긴 호흡으로 투자 의사를 결정하라

주식시장이 본격적인 약세장으로 접어들었다.
대공황 이후 가장 긴 기간 동안 주가 하락이 이어졌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상황에 대비해
보다 긴 호흡으로

Writer.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투자전략팀장)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전 세계 주요 국가는 각각 저마다의 이유로 고통을 겪고 있다. 미국은 연준의 통화 긴축으로, 유럽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중국은 주요 도시 봉쇄 조치에 따른 생산 차질로, 중·저소득 신흥국은 곡물 가격 급등, 자본 유출, 환율 불안 등으로…. 각국이 저마다 처한 어려움의 양태는 다르지만, 그 어려움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을 궁구窮究해보면 바로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미 연준의 통화 긴축도, 에너지와 곡물 가격 급등도, 중국의 도시 봉쇄도 모두 인플레이션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야, 바보야 It’s the inflation, stupid!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통화주의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이라고 일갈했다.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서 이 말을 풀이해본다면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잘못된 통화정책, 이를테면 과도한 통화 완화나 지나친 유동성 공급의 결과라는 뜻이다. 프리드먼의 명제가 옳든 그르든 적어도 올해 미 연준의 행보는 인플레이션 시기 중앙은행 역할에 대한 프리드먼의 주장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미 연준은 코로나19 발발 후 부터 지금껏 유지해온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빠르게 거두어들이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3월(25bp)과 5월(50bp)에 이어 6월에는 자이언트스텝(75bp)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후에도 연준은 기준 금리 인상을 지속해 연말 기준 금리는 3.4% 수준 이상까지 오르리라 예상한다. 연준뿐만 아니라 지금껏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오던 ECBEuropean Central Bank, 유럽중앙은행는 3/4분기 내로 마이너스 금리에서 탈피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고, 한국은행은 올해 기준 금리를 2.25~2.50%까지 추가로 인상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주요국 모두가 연준의 뒤를 이어 기준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기준 금리 인상(그리고 유동성 흡수)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중앙은행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렇다면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이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향후 물가 안정에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볼커와 토요일 밤의 학살

시간을 거슬러 1979년 10월 6일 밤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미 연준 의장이던 폴 볼커Paul Volcker는 늦은 밤 기자회견을 열고 기준 금리를 11.5%에서 15.5%로 무려 4%p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물론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서였다. 기준 금리 인상 폭만 보자면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이름 모를 신흥국에서나 있을 법하기에 미국에서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지금으로선 좀체 상상하기 어렵다. 여하간 연준이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를 열고 기준 금리를 충격적으로 올린 만큼 그 파란은 엄청나서 금융시장은 그날을 ‘토요일 밤의 학살Saturday Night Massacre’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볼커는 이 같은 충격요법을 이듬해까지 이어가며 기준 금리를 무려 20%까지 인상했다.

그날이 유명한 것은 연준이 전격적으로 기준 금리를 인상해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연준 의장이 자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뉴스 미디어에 등장해 일반인에게 얼굴을 알렸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미 연준 의장이 뉴스에 자주 언급 또는 노출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연준은 ‘비밀의 사원Secret Temple’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통화정책을 결정하고서도 이를 대외에 발표조차 하지 않던 때여서 연준 의장이 던 볼커의 예기치 못한 등장은 그야말로 뉴스거리가 될 만했다. 연준의 비밀주의는 이후로도 더 이어졌는데, 연준이 비밀주의의 장막을 본격적으로 걷어내고 통화정책 결정 내용과 방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연준이 설립(1914년)되고 거의 100년이 지난 2011년 벤 버냉키Ben Bernanke 의장 때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OECD CPI 한미영 기준금리 비교

미 경기 침체 시기 주가 하락률 비교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대응은 더 과감해질 수 있다

볼커의 과감한 도박은 결국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 했다. 이때 중앙은행과 금융시장은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교훈을 얻었는데, 그것은 ‘외생 요인(흔히 공급 요인으로 불리며 식료품 및 에너지 등의 가격 변동 등을 말함)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때에는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라도 중앙은행은 과감하게 통화 긴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인플레이션 환경은 공급망 병목, 원유 및 곡물 가격 상승 등 외생 요인에 의해 물가가 견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커가 당면했던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 물론 현재는 외생 요인뿐만 아니라 서비스 물가가 상승하고 있으며, 임금-물가 상승 악순환Wage-Price Spiral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등 구조적 요인까지 가세하고 있어 오히려 볼커 당시 보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 전개 되고 있다.
만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해 원자재 가격이 지금처럼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기업들이 비용 상승 요인을 제품 가격에 반영한다면, 피고용자들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만큼 임금에 반영하길 요구한다면, 소비자물가는 각국 중앙은행이 목표로 하는 물가 안정 목표(2%)를 훨씬 상회하는 상태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의 실현 확률이 결코 낮지 않다는 점에서 연준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가 쉬이 완화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인플레이션이 기준 금리 인상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안정적으로 하락하지 않는다면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대응은 더욱 과감해질 수 있다.

연준뿐만 아니라 지금껏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오던 유럽중앙은행은
3/4분기 내로 마이너스 금리에서 탈피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약세장에 진입한 주식시장, 긴 호흡의 투자 필요

주식시장은 이미 약세장에 접어들었다. 4~5월 중 나스닥Nasdaq 등 주요 주가 지수는 주간 기준으로 8주 연속 하락하기도 하는 등 192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근 100년 만에 가장 긴 기간 동안 주가가 하락하는 역사적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주가가 급락한 경우, 저가 매수는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좋은 전략의 하나였던 때가 많았다. 지금도 주가가 큰 폭으로 빠져 밸류에이션Valuation, 주식 가치 평가이 높아진 만큼 여유 자금이 충분한 투자자라면, 또 투자 시계 Investment Horizon가 장기인 투자자라면 지금 주식을 사두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투자 전략일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이 주가 바닥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증시를 둘러 싼 주변 환경은 너무 험난하다. 물가 불안과 통화 긴축이 라는 증시 위협 요인 외에도 경기 침체, 기업 이익 감소, 투자자의 포지션 조정 미흡★ 등도 향후 주가 하락을 야기할 잠재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미 경기 침체기의 미 주식(S&P500 기준)은 평균 30% 이상 하락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현재 미 S&P500의 고점 대비 하락률은 20% 초반에 그치는 실정이다. 미 경제가 지금 당장 침체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하지만, 올해 4/4분기 이후 미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히 높고, 내년 중 미 경기 침체를 예상하는 시각도 늘어나고 있어 향후 경기 여건 변화에 따라 주가 하방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투자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해외 리서치업체의 서베이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가가 하락할 당시 투자자의 포지션 조정 비율(손절 매매)은 60%에 달했으나, 지금은 그 비율이 5%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주가가 추가 하락할 경우 손절 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 인데, 수급적으로 주가 하락을 야기할 수 있는 요인이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