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 ]Exhibition
전통을 거부한 예술가들
새로운 시대를 호명하다
화려함과 혼란이 공존하던 19세기 말,
비엔나에는 전통에 반기를 든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기존의 예술 사조에서 ‘분리’되기를
자청했던 몽상가들.
그들이 꾸었던 총천연색 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펼쳐졌다.
Editor. 황진아 Photo. 레오폴트미술관, 한경DB
어제의 세계를 사는 황제의 도시
유럽의 작은 나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과거 중부 유럽 전역을 아울렀던 ‘황제의 도시’였다. 음악과 예술의 중심지였고 우아한 사교와 유미주의가 싹텄다. 그러나 화려함의 반대편에는 쇠락의 그림자도 드리웠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향하던 19세기 말의 비엔나는 오랜 보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유독 시대의 변화를 외면했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의 회고록 제목처럼, 비엔나는 ‘어제의 세계’에 살고 있는 도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반된 분위기에서 미술, 음악, 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 비엔나식 모더니즘을 탄생시킨 예술운동이 일어났다.
1857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허물고 반지 모양의 도로 ‘링슈트라세 Ringstraße’를 건설하라고 명했다. 링슈트라세에는 정치·행정·문화·예술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들어섰고,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집결했다. 그중에는 “시대에는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모토로 ‘비엔나 분리파 Secession’라는 깃발 아래 모인 이들도 있었다.
반신 누드의 자화상, 리하르트 게르스틀, 1902~1904년
수풀 속 여인, 구스타프 클림트, 1898년경
새로운 예술의 실험 무대를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00년대 비엔나를 무대로 새로운 예술을 실험한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특별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를 개최한다. 2022년 성황리에 개최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의 시대적 흐름을 이어가는 전시로, 세기 전환기라는 짧은 시기에 기존 예술의 틀을 깨고 혁신의 중심에 선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에서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레오폴트미술관의 소장품 중 엄선한 대표 작품들을 대거 소개한다. 레오폴트미술관은 컬렉터 루돌프 레오폴트Rudolf Leopold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트 레오폴트Elisabeth Leopold가 설립한 곳으로, 세계 최대의 에곤 실레 컬렉션을 보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비엔나 모더니즘’, ‘1900년대 비엔나’, ‘비엔나 분리파’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회화, 드로잉, 포스터, 사진, 공예품까지 총 191점이 전시되는 비엔나 분리파 최대 규모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지만, 레오폴트미술관이 한국에 소개되는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도 놓치기 아쉽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에곤 실레, 1912년
비엔나 1900을 대표하는 이름들
이번 전시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포함해 우리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 6명의 삶과 작품이 대표적으로 소개된다.
‘황금빛의 화가’로 익숙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1900년대 비엔나’라는 키워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클림트는 비엔나 분리파의 초대 회장으로,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비엔나 예술계가 모더니즘으로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클림트가 동료들과 함께 창립한 비엔나 분리파는 당시 유럽 전역에서 시작된 새로운 예술운동을 오스트리아에 들여왔고, 회화·드로잉·조각·디자인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예술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클림트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예술가이자, 독특한 화법으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화가 에곤 실레를 집중 조명한다. 표현주의 예술의 선구자 오스카 코코슈카, 리하르트 게르스틀, 그리고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을 주도하며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요제프 호프만, 콜로만 모저도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제14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알프레트 롤러,
1902년
예술이 된 일상, 일상이 된 예술
한편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총체예술’이다. 클림트는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교류하는 자리인 ‘전시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조각·회화·디자인·음악 등 예술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전시하는 ‘총체예술’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1902년 베토벤을 주제로 열렸던 제14 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개막식에서처럼,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클림트의 작품 ‘베토벤 프리즈 Beethoven Frieze’를 영상과 음악으로 재구성했다. 대형 화면에서 영상으로 살아난 작품을 음악과 함께 감상하며 관람객이 총체 예술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세기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들이 지향한 총체예술은 예술적 장르를 허물고 예술과 일상을 통합하고자 한 ‘비엔나 디자인 공방’으로 이어진다. 전시 제3부에서는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가구와 벽지, 포스터, 우표 등 각종 공예품을 볼 수 있다.
변화하는 세계, 그 끝에서 만나는 감동
특별전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프롤로그부터 3부까지는 비엔나 예술계에 등장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1897년 창립한 비엔나 분리파의 역사와 이념, 그리고 비엔나 분리파의 철학을 반영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소개하는 ‘앞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4부와 5부는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표현주의적 경향과 특징을 살펴본다.
이 중 관람객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전시의 4부와 5부일 것이다. 시대를 앞서갔다고 평가받는 표현주의 예술의 아이콘 리하르트 게르스틀과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은 그동안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기에 더욱 특별하다. 5부에서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화가 에곤 실레가 남긴 자화상과 연인들의 초상, 드로잉, 풍경화 등의 작품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의 감동은 전시 마지막에 상영되는 영상을 통해 더 깊은 울림이 된다.
개막 전부터 대중의 큰 관심을 모으며 티켓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은 미술 사조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된 ‘비엔나 모더니즘’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기회다.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 예술가들, 그들의 꿈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피어났을까. 세기말 비엔나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을 따라가 보자.
원탁,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에곤 실레,
1918년
안락의자, 721번, 디자인: 오토 바그너 /
제작: 야코프 & 요제프 콘, 1902년경
관람 안내
전시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1
전시 기간 2024년 11월 30일~2025년 3월 3일
주요 작품 구스타프 클림트 ‘수풀 속 여인’,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등
회화·드로잉·포스터·사진·공예품 총 191점
관람 시간 10:00~18:00(입장 마감 17:20)
*수·토요일: 10:00~21:00(입장 마감 20:20)
특별전의 감동을 더할,
깊이 있게 즐기는 TIP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특별 전시 감상 전 꼭 읽어봐야 할 책
전원경 외 / 한국경제신문 / 1만 5,000원
전시에 앞서 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한경아르떼 <미셸 들 라크루 아, 파리의 벨 에포크> 를 꼭 읽어보 자. 파리의 아름다웠던 시절 ‘ 벨 에포크’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가 머문 시선은 어떻게 붓으로 탄생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작품 속 배경이 된 세기 전환기 비엔나의 시대상과 문화 예술의 흐름, 예술가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책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이 출간됐다.
특별전 감상 전 읽어볼 만한 정보와 상식을 담은 이 책은 전시의 대표작품 29점의 감상 포인트, 전원경 예술 전문 작가가 소개하는 1900년대 비엔나의 시대상, 예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등을 담았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을 갈망했던 예술가들의 꿈을 좇아가는 세기말 비엔나의 문화 예술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