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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APRIL

[ WEALTH & ]Investment

미· 중 관세 전쟁
장기화 여부에 따른
한국 경제의 앞날은?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재집권을 하면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의 갈등이 한국 경제에 미칠
직·간접적인 영향과
그에 따른 근본적 대비책을
살펴보도록 한다.

Writer. 박형중(우리은행 WM솔루션부 Economist)
Photo. 프리픽

다시 트럼프

2018년 이후 가열된 관세 분쟁이 바이든 행정부 시기 ‘휴전’ 상태에 들어서는 듯했으나, 미국 대통령에 재선 된 트럼프가 다시 관세를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두르며 무역 갈등이 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중을 축으로 한 무역 갈등을 단순히 일시적인 무역 분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대외 정책·기술·산업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패권 경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는 한국 경제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각각 안보·기술협력 면에서도 뗄 수 없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중국을 향해 반도체·디스플레이·화학 제품 등을 대량 수출하고, 미국에는 자동차·철강·전자 제품 등을 공급하면서 수출 주도형 성장 구조를 이어왔다. 만약이 두 거대 시장이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거나 고착화하면 한국 경제는 복합적인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미·중 패권 경쟁의 본질

미·중 갈등의 출발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가 본격적으로 표출되면서부터다. 당시 미국은 무역적자 해소와 공정무역을 명분 삼아, 주요 교역국을 상대로 관세를 매기는 조치를 취했다. 동시에 중국에 대해서는 강제 기술이전,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트집 잡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통신·반도체·인공지능AI 같은 첨단산업에도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중국 압박이 단순한 통상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 계기는 5G 통신 장비,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중국 기업을 직접적으로 견제했을 때다. 수출제한, 부품 공급 차단 등 미국이 취한 다층적 조치들은 다른 자유무역 분쟁과 달리 ‘안보 논리’와 ‘기술 우위 확보’를 내세운 이례적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정치 지형도 크게 바뀌었다. 공화· 민주 할 것 없이 ‘대중 강경론’이 자리 잡으며,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대 對 중국 정책 기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 구조가 형성됐다.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정서가 초 당적 합의를 이룬 형국이 됐기에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어느 정도는 이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쉽게 끝나지 않을 ‘장기전’, 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는 이전보다 더 강화된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통상 압박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중국이 ‘미국 패권’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면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설사 일시적으로 관세가 유예되거나 정치적 이벤트에 따라 협상에 진전이 있더라도, 근본적 패권 경쟁 구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두 나라의 갈등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 성이 높다.
물론, 미국 내부에서는 기업과 산업별로 중국 시장을 활용하려는 이해관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대중 강경 기조가 정치적으로 상당한 지지를 받아 미국이 통상 정책을 완화하기가 쉽지 않고, 중국 역시 핵심 기술 자립(반도체 육성 등)을 가속화하려는 국가 전략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미 행정부가 수출 통제·사이버 안보 위협 등을 이유로 중국 기업에 제재를 가한다면, 중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더 강력한 반격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 이런 상호 보복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 첨단기술 분야의 분업 체계가 크게 변형되거나 양분되는 상황마저 펼쳐질 수 있다. 과거 무역분쟁이 관세율을 몇 퍼센트 인상하느냐 혹은 철강이나 자동차 관세를 얼마나 부과하느냐 같은 문제에 국한됐다면, 이제는 주요 첨단 핵심 산업인 반도체·배터리·바이오·AI 산업의 지형도를 뒤흔드는 거대한 흐름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국내총생산 GDP의 상당 부분이
무역에서 나온다. 특히 중국은 한국 수출액의 20~25%를 흡수하는 최대 시장이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화학제품 등 상당수 주력산업이 중국 수요에 크게 의존해 온 것도 사실이다.
만약 중국이 미·중 갈등 때문에 투자·소비가 위축되고 첨단 산업에 대한 해외 부품·장비 조달에
제약을 받는다면, 한국 기업들은 그 파장을 곧바로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 수출·경제에 드리우는 그림자

한국 경제는 트럼프의 통상·무역 정책이 지속되고 미· 중 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외부 충격에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에 미치는 가장 가시적인 영향은 수출 둔화다.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국내총생산 GDP의 상당 부분이 무역에서 나온다. 특히 중국은 한국 수출액의 20~25%를 흡수하는 최대 시장이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화학제품 등 상당수 주력산업이 중국 수요에 크게 의존해 온 것도 사실이다. 만약 중국이 미·중 갈등 때문에 투자·소비가 위축되고 첨단 산업에 대한 해외 부품·장비 조달에 제약을 받는다면, 한국 기업들은 그 파장을 곧바로 맞닥뜨리게 된다. 중국이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자체 공급망 강화와 자급률 제고에 속도를 낸다면, 중간재·부품을 중국에 수출하던 한국의 전통적 교역 경로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관세 인상은 양국 간 무역뿐 아니라 전 세계 교역량을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교역 위축이 글로벌 경기둔화로 이어지면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수출이 줄고, 투자심리가 얼어붙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앞으로 미국은 동맹국들에 “중 국산 부품 사용을 줄이라”거나 “중국과의 기술협력을 제한하라”고 요구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는 곧 한국 기업이 어느 시장에 집중할 것인지, 생산 시설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는 의미다. 물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이 단기적으로 미·중 갈등의 반사 이익을 얻는 시나리오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컨대 중국 기업이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 한국 기업들이 그 공백을 채우며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기술 자립에 더욱 박차를 가해 중장기적으로 반도체·배터리·부품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자급을 이뤄내면, 한국 수출에 부메랑이 될 위험도 크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관세 정책은 한두 번의 타협으로 끝나는 ‘소나기’가 아니라 앞으로 오랫동안 이어질 ‘가뭄’에 가깝다. 그만큼 국가와 기업이 물류, 투자, 인력, 기술개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한국 경제의 과제는 “생존과 도약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단기 충격을 흡수할 안전판을 마련하고 미래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개혁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전략이 절실하다. 첨예한 패권 경쟁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이를 발판 삼아 혁신과 구조개혁을 가속화한다면 한국은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준비 없이 무작정 상황이 진정되기만 기다린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금 위기의 한복판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