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 ]Exhibition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與世同寶
-세상 함께 보배 삼아>
<훈민정음 해례본>부터 겸재 정선의 산수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까지
유물들의 이름만으로도 압도당한다. 개관 한 달 만에 누적 관람객 7만 명을 돌파한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기념전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전이다.
Editor. 강은진 Photo. 간송미술문화재단
정선 산수화, 신윤복·김홍도·김득신의 풍속화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제1전시실
간송미술관 in 대구
지난 9월 3일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 우리 것을 지키고자 노력한 간송의 문화 보국 文化 報國 정신을 기려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점이자 한국 근대 미술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간송미술관이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성북동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간송미술관 전시가 열릴 때마다 관람객의 긴 줄이 성북동 큰길까지 늘어섰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은 1971년부터 2014년까지 봄과 가을 무료 전시를 열었다. 전시 기간은 각각 보름. 그 귀중한 국보와 보물들을 불과 2주 동안만 볼 수 있으니 문화재 애호가와 연구자들이 2~3시간씩 기꺼이 줄을 선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시 건물인 보화각의 노후화가 갈수록 심해져 어려움이 컸다.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1938년 미술품 소장과 전시를 위해 건립한 건물로, 지은 지 70년이 넘어가면서 전시 관람은 물론 항온·항습 등 유물 보존조차 힘들어졌다. 이에 간송미술관은 신관 설립을 추진하고, 2016년 대구광역시와 ‘대구간송미술관 건립· 운영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연면적 8,003m2 규모로 △지하 1층에 전시실(2개소) 및 수 공간(야외), △지상 1층에 전시실(4개소)과 보이는 수리복원실, 간송 아트 숍, 강당 및 휴게시설, △지상 2층에는 매표소와 아카이브집(도서 자료 실), 강의실, 박석마당(야외) 등으로 구성됐으며, 2022년 1월에 착공한 후 올해 4월 준공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1938년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서울 간송미술관의 첫 분관이자,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유일한 상설 전시 공간이다.
‘미인도’가 전시된 제2전시실
구름 인파 몰린 개관전
간송미술관은 오는 12월 1일까지 개관 기념 전시
<여세동 보與世同寶-세상을 함께 보배 삼아>를 열고 있다. 여세동보與 世同寶는 ‘세상과 더불어 보물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보화 각 머릿돌에 새겨진 글이다. 간송의 스승 오세창이 제자가 수집한 ‘한국의 보배를 국민과 함께 누리자’라는 의지로 썼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기념 전시 슬로건도 ‘與世同 寶’이다. 간송이 문화 보국의 정신으로 수집한 문화유산들을 세상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개관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전시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소개하기보다 작품 하나하나가 보배라는 점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총 4개 전시실을 마련하고 실별로 차별화한 공간을 구성했다.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청자상감운학 문매병(국보), 신윤복의 ‘미인도’(보물)를 비롯해 간송 컬렉션을 대표하는 국보와 보물 40건 97점이 전시됐다. 이는 간송미술관이 개최한 역대 전시 중 최대 규모의 국보와 보물을 선보인 전시로,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 이미 개관 한 달 만에 누적 관람객이 7만여 명 돌파했으며, 여전히 주 중 주말 가리지 않고 구름 인파가 몰리는 중이다.
제1전시실은 간송 전형필이 비교적 초창기에 수집한 회화로 채워졌는데, 대중에게 잘 알려진 정선 산수화, 신윤복· 김홍도·김득신의 풍속화가 총망라되어 있다.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 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로 그린 이정의 대나무 그림을 비롯해 정선·심사정의 산수화, 김홍도의 고사 인물화, 신윤복·김득신의 풍속화 등 다양한 장르의 회화작품이 소개된다. 또한 <금보琴譜>(보물) 등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대변하는 세 권의 책도 함께 전시된다. 출품작들은 조선 시대 문화와 예술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이자 국가적 유산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공개된 제3전시실
훈민정음 해례본·미인도 최고 인기
신윤복의 ‘미인도’는 여전히 국민을 매료시키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 제2전시실은 오직 ‘미인도’만을 위해 조성한 공간으로 특별하게 꾸몄다. 소수의 인원이 독대하듯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
어두운 방 한가운데 조용히 자리 잡은 ‘미인도’는 공간의 마력 속에서 새롭게 다가왔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고미술품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실제 마주한 강렬한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었다. 분명 교과서 등에서 많이 본 그림이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본 느낌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시관 중 하나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제3전시실의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 정음 해례본>은 한글 창제 원리와 그 과정을 담은 문서로, 간송이 6·25전쟁 당시 피란길에 잠을 잘 때도 베개 밑에 넣어둘 정도로 애지중지하며 지킨 유물로 전해진다. 이 유물이 서울 바깥에서 전시되는 건 50여 년 만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현대미술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훈민정음이 지니는 애민 정신을 강조하고, 문자에 대한 배리어프리 Barrier-free를 확장하고자 했다. 제4전시실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불교미술과 도자기, 서예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전시실의 초입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이 설치되는데, <난맹첩>(보물)의 묵란화 4점과 추사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서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예 전시를 지나면 간송의 컬렉션을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병(국보),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국보)을 감상하게 된다.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병 甁 류 이외에도 청자기린유개향로(국보), 청자오리형연적(국보), 백자사옹원인(보물) 등 다양한 쓰임을 위해 섬세하게 제작한 각기 다른 형태의 도자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청자기린유개향로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 탄생
마지막 전시실은 조선의 대표 화가, 대표 작품을 실감 영상을 구현해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정선·김홍도·신윤복·이인문 등 조선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재구성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지나가는 하루의 시간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약 38m의 반원형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영상은 원작의 아름다움은 물론, 큰 스케일의 화면이 주는 현장감과 몰입감이 실로 엄청났다. 이 밖에도 ‘간송의 방’에서는 대수장가, 연구자, 예술가, 교육자 등 간송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작 26건 60점을 만날 수 있다. 이현서옥 梨峴書屋, 옥정연재 玉井硏齋 , 보화각 총 3개로 나눈 구역에서 간송의 삶과 정신을 엿보는 작품들과 영상이 펼쳐진다.
오랜 기간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문화 보국 정신으로 수집한 문화유산과 그 가치를 소개하고, 우리 문화와 전통에 대한 현재 적 담론을 지역 및 세대의 경계를 넘어 미래 세대와 함께 풀어가는 미술관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유일한 상설 전시 공간으로 간송미술관이 지난 50년 동안 다뤄온 다양한 콘텐츠와 연구 주제를 토대로 다채로운 전시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지속적 연구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등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가치 확산에 기여하며, 대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중남부 지역에 문화적으로 공헌하는 미술관으로 거듭나며 새로운 랜드마크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김득신, <긍재전신첩> ‘야묘도추
김정희, <난맹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