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 ]도시를 바꾸는 현대 건축가 ⑤
한계를 뛰어넘는 도시 설계자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 마스
Winy Maas
도시 혁신은 어떻게 이루는가?
그 답은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 마스와 그가 이끄는
건축가 그룹 MVRDV의 건축물에서 찾을 수 있다.
비니 마스는 건축가이자 조경가,
도시계획가로
단순히 멋진 건물만이 아닌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랜드마크를 선보여왔다.
Editor. 두경아
Photo. MVRDV 건축 스튜디오
올해 2월 부산시는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 마스를 명예 자문 건축가로 위촉했다. 부산의 건축·도시 현안 사업의 발전 방향, 건축디자인 혁신과 관련한 자문을 받기 위해서다. 그 일환으로 그는 지난 6월에 열린 ‘부산국제건축디자인워크숍’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 ‘탄소 중립 건축 도시 부산’에 대한 담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비니 마스는 현시대 가장 인기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그가 단순히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여서 만은 아니다. 그는 건축가이면서 도시계획가이자 조경가다. 혁신적이고 실험적이며, 이론과 실무를 융합한 다양한 건물·도시·풍경의 설계와 디자인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그가 선보인 혁신적 건축물에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시장과 아파트를 결합한 ‘마르크트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전원주택 ‘밸런싱 반’, 자연을 담아낸 고층 아파트 ‘팔리’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역 고가도로 재생 프로젝트 ‘서울로7017’과 파라다이스시티 건물 클럽 외관을 설계했다.
마스는 RHSTL 포스코프 대학에서 조경을 공부했고, 델프트 공과대학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으로 학위를 받았다. 1993년 그는 야코프 판레이스 Jacob van Rijs 나탈리 더프리스 Nathalie de Vries와 의기투합해 자신들의 이름을 딴 MVRDV를 창립했고, 이를 통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MVRDV의 슬로건 역시 ‘우리는 도시와 풍경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이다. 그는 현재 델프트 공과대학 건축학부에서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유형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건축 환경에 대한 사용자의 정의,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설계한 건물을 통해 보다 밀도 있고 친환경적이며, 매력적이고 살기 좋은 도시를 추구합니다.”
이러한 철학이 반영된 건축 공로를 인정받아 마스는 2015년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네덜란드 사자 훈장 Dutch Lion을, 201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 Chevalier de la Légion d'honneur을 받았다.
조경가이자 건축가, 도시계획가인 비니 마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쇼핑가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크리스탈 하우스. 유리 벽돌과 창틀로 마감해 주변 경관과 어울리도록 했다.
현대건축의 전시장
마르크트할 Markthal
마르크트할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광장 시장과 아파트를 입체적으로 결합한 프로젝트다. 시장은 아치형 아파트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건물은 접근성이 좋게 개방형으로 설계했지만, 변화하는 날씨에 대응하기 위해 건물 앞뒤는 대형 유리로 마감했다. 유리는 테니스 라켓 제조 기술과 유사한 건설 시스템을 적용해 강철 케이블로 연결돼 있다. 유연성도 충분히 갖춰 폭풍우에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40m 높이의 아치 지붕 아래 자리한 시장은 천장에 그려진 대형 벽화로 활기를 띤다. 예술가 아르노 쿠넌과 이리스로스캄의 작품 ‘코르뉘코피아 Cornucopia’는 꽃과 곤충, 음식의 이미지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형상화했다. 엄청나게 넓은 면적이지만 해상도는 놀랍도록 선명하다. 이미지는 픽사 Pixar 소프트웨어로 렌더링해 구멍이 뚫린 알루미늄 패널에 인쇄한 다음, 소음을 제어하기 위한 음향 패널에 부착해 설치한 것이다.
아치형 건물 1·2층은 레스토랑과 카페 및 상점 등 상업 시설이 있고, 나머지 층에는 24개의 펜트하우스를 포함해 102개 임대 아파트와 126개의 일반 아파트가 들어섰다. 모든 아파트는 니우어마스강과 유명 관광지인 라우렌스 개혁 교회 Laurens Kerk, 시장을 전망으로 한다. 자연 채광이 필요한 거실과 침실은 외부, 즉 시장 반대편에 자리 잡았고 주방·식당·보관실은 시장이 바라다보이는 쪽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소음과 냄새를 막아주는 기능이 있는 삼중 유리창이 설치됐다.
비니 마스의 대표작 ‘마르크트할’은 현대건축의 전시장으로 일컫는다.
현대 예술 작품 같은 전원주택
밸런싱 반 Balancing Barn
영국 서퍽 Suffolk 주 토링턴 Thorington의 시골 마을에 건축된 밸런싱 반 Balancing Barn은 건축과 엔지니어링을 통한 그림 같은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하나의 현대 예술 작품이다. 300m 거리의 진입로를 따라가면 만나는 건물 정면은 반짝이는 금속으로 마감한 작은 주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선을 옆으로 틀어보면, 예상치 못한 길이의 건물이 언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건물의 총 길이 30m 중 절반이 경사면 위에 위치한 형태다. 이 멋진 건물을 만든 이유는 자연에 대한 선형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땅에서는 자연을 경험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 높이에서 자연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것은, 이 구조물이 중앙 콘크리트 중심에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땅에 닿은 부분은 공중에 뜬 부분보다 무거운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금속 마감은 주변 자연환경과 변화하는 계절을 반영한다. 내부로 들어서면 주방과 넓은 식당, 4개 침실로 이어지는데, 집 중앙에는 숨은 계단이 있어 아래에 있는 정원으로 나갈 수 있다. 건물 가장 안쪽에는 삼면이 창문으로 된 개방감 있는 넓은 거실이 있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도 높다. 단열성이 좋은 건축자재를 사용했고, 열 회수 시스템으로 환기가 되며, 지열 히트 펌프로 난방이 된다.
건물의 절반 가량이 경사면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 만나는 건물 정면은 마치 작은
주택처럼 보인다.
완벽히 계산된 불규칙
팔리 Valley
암스테르담 자위다스 ZuidAs 지구에서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67m, 81m, 100m 3개 건물이 하나로 연결돼 있는데, 건물의 반쯤은 외벽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한 모양을 띤다. 그 사이사이에 식물이 자라고 있어 지질의 단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021년 ‘엠포리스 마천루 어워드Emporis Skyscraper Awards’에서 세계 최고의 새로운 마천루로 선정된 팔리는 사무실, 상가, 문화시설, 아파트 등 다양한 시설이 한데 모인 주상 복합 건물이다. 4층과 5층의 타워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푸른 계곡은 외부에 있는 2개의 돌계단을 통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이 건물은 황량한 사무실 환경에 자연을 들이는 시도로 계획됐다.
건물은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상업 지구에 해당하는 층에는 용도에 맞게 유리로 매끄럽게 마감했고, 그 위 아파트 층은 마치 유리블록이 무너져 내려 내부의 험준한 바위 표면이 드러난 듯 바위와 녹지가 가득해 보인다. 건물은 대부분 개방되어 있는데, 대로변에서 계곡까지 지그재그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마치 등산하듯 올라갈 수 있다. 200채의 아파트는 모든 가구에 충분한 채광과 전망이 보장되도록 맞춤형 디지털 도구를 통해 설계됐고, 바람·햇빛·온도·유지 관리 같은 요소를 고려해 건물의 각 위치에 적합한 식물을 선택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나무는 주로 저층에 있지만, 최상층은 작은 식물을 배치하는 식이다. 이 식물들은 자동 관개 시스템과 ‘외관 정원사’를 통해 유지 관리되도록 했다.
200채의 아파트는 모든 가구에 충분한 채광과 전망이 보장되도록 맞춤형으로 설계했다.
지질의 단면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외벽 마감
지질의 단면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외벽 마감
200채의 아파트는 모든 가구에 충분한 채광과 전망이
보장되도록 맞춤형으로 설계했다.
미학적 가치를 지닌 공공 도서관의 진화
톈진 빈하이 도서관 The Tianjin Binhai Library
비니 마스가 톈진 도시 설계 연구소TUPDI와 협업해 선보인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독일의 건축 사무소 GMP의 12만m2 마스터플랜의 일부로 단지는 CBD, 구시가지, 주거지역, 상업지역 및 정부 구역의 접점이 되어 각각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목적으로 세웠다.
도서관은 한가운데 빛이 나는 구형 강당이 자리하고, 그 주변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계단식 책장이 감싸는 구조로 되어 있다. 책장은 구체 형태를 반영해 테라스형으로 만들었는데, 계단식으로 배열해 사람이 직접 책장 위로 올라가 책을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책장은 또한 계단뿐 아니라 좌석 등의 기능을 하며, 외부 루버의 형태적 요소 역할도 맡고 있다. 또 건물 밖 입구 쪽에서 봤을 때 타원형 모양을 띠며, 건물 안쪽 구형 강당과 함께 마치 사람의 눈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5층으로 구성된 도서관은 지하층에 서비스 공간과 대형 자료실 등을 배치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도록 했고, 1층은 소통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계획해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독서 공간 등을, 2·3층에는 독서실·라운지·서고 등을, 그 위층에는 회의실·사무실·컴퓨터·오디오 룸과 2개의 옥상 테라스를 배치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구상부터 완공까지 3년이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은 탓에 계획이 일부 변경되면서 도서관 꼭대기 층의 서고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구조다. 지금 보이는 꼭대기 층 책들은 알루미늄판에 프린트한 그림이다.
도서관은 한가운데 빛이 나는 구형 강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변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계단식 책장이
감싸는 구조다.
책장은 계단식으로 배열해 사람이 직접 책장 위로 올라가 책을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