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MAY+JUNE

[ WEALTH & ]Investment

마러라고 합의
Mar-a-Lago Accord는
실현될 수 있을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금융시장은
물론 세계경제까지 예측 불가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통적인 경제학 이론에서 벗어나는
관세정책이
얼마만큼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Writer. 최진호(우리은행 WM솔루션부 Economist)
Photo. 프리픽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 피로감 극심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대한 금융시장의 피로도가 극심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의적 상호 관세는 글로벌 주식시장에 블랙 먼데이(4월 7일)를 발생시켰고, 며칠만 에 90일 유예 선언을 하면서 다시 글로벌 주가지수는 불기둥을 내뿜는 희귀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트럼프가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관세 부과 후 이를 유예해 주며 협상의 지렛대로 쓰는 패턴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음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트럼프의 패턴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롤러코스트 장세를 보이는 모습이다. 무분별한 관세정책은 미국을 포함한 어느 국가에도 좋을 수가 없다. 트럼프의 강경한 관세정책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트럼프 지지율 하락이라는 미국민들의 저항에도 트럼프가 이처럼 공격적 관세정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으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트럼프는 미국 무역수지 적자를
불공정한 교역의 부산물로 취급

표면적으로 트럼프는 관세정책으로 얻을 수 있는 정책 효과로 세 가지 정도를 주장한다. 첫 번째는 미국의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를 통해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하고, 마지막 세 번째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불공 정한 관세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불공정한(?) 거래로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를 ‘더러운 dirty 국가들’이라 표현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정말 불공정한 관세 때문일까? 거시경제적으로 대외수지(≒무역수지)라는 항목은 국민소득 항등식에서 총저축과 총투자(≒총지출)의 차이로 정의된다. 즉, 국가 경제를 구성하는 주체들(가계, 기업, 정부)이 재화와 서비스 등을 얼마나 소비하고 얼마나 저축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경제적 행위가 진행된 후 남겨진 것들의 총합이 대외수지라는 의미다. 따라서 국가 거시경제적 입장에서 대외수지가 적자(총지출>총저축)라는 것은 개인이나 개별 기업이 적자 경제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며, 한 국가의 대외수지가 적자 또는 흑자라는 현상은 ‘좋다’, ‘나쁘다’라는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대외수지가 과도하게 적자 또는 흑자를 보이면 금리나 환율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전반적인 경기 흐름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책임성을 띠는 사람들(대통령, 정치인, 중앙은행 등)의 심기가 불편할 수는 있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를 바꾸겠다고 관세를 통해 억지를 부릴 수 있겠구나’라고 이해하려 해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 국가의 대외수지가 적자 또는 흑자라는
현상은 ‘좋다’, ‘나쁘다’라는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대외수지가 과도하게 적자 또는 흑자를 보이면 금리나
환율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전반적인 경기 흐름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책임성을
띠는 사람들(대통령, 정치인, 중앙은행 등)의 심기가
불편할 수는 있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의 무역수지 흑자와 약달러는 양립하기 힘든 목표

국가 경제에서 수입이 늘어 대외수지가 적자를 보이면,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는 절하되고 이는 수입 물가 상승을 자극해 물가와 금리가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을 바탕으로 소비 중심의 막강한 경제성장을 이뤄왔으며,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달러의 힘을 빌려 대외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강한 달러와 낮은 금리(코로나19 이전까지)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 이는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에서 예외로 적용받는, 기축통화국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미국이 누려온 특권은 무시한 채 강한 달러가 더러운(?) 국가들에 무역흑자를 안겨주어 미국의 무역적자가 확대됐다는 주장과, 그래서 관세를 통해 이를 바로잡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약달러와 저금리를 유도하겠다는 논리는 억지에 가까워 보인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론적으로 관세를 통해 미국의 대외수지가 흑자로 반전된다면, 그때 달러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제학 이론으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목표가 양립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개입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1985년 플라자합의와 같이 달러의 인위적 평가절하를 유도하겠다는 ‘마러라고 합의 Mar-a-Lago Accord’가 점점 힘을 받는 배경이다.

마러라고 합의는 결국 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과제

마러라고 합의는 스티븐 미런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CEA 위원장이 작성한 보고서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를 기반으로 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1) 인위적인 달러 가치의 절하를 이끌어내 미국의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로 무역수지 개선을 도모하고, 2) 늘어난 재원으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3) 기축통화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세 가지 목표부터 의심스럽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탄생한 ‘미국의 달러 절하’와 ‘일본의 엔화 절상’이라는 결과물이 일본을 버블경제로 몰아넣고 그것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했다는 폐해를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국가가 선뜻 나서 인위적 달러 약세를 받아주겠다고 적극적인 협력의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그럼에도 미국에 충성도가 매우 높은 가상의 어느 국가가 나서서 자국 통화를 절상하고 달러 절하에 합의했다고 가정해 보자. 달러가 절하됐으니 실물경제 측면에서는 미국의 수출이 증가하고 수입이 감소할 수는 있겠다. 미국의 무역적자 개선은 어느 정도 기대해 볼 만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달러의 투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축통화국이 스스로 가치를 낮추겠다는데, 가치가 하락하는 기축통화를 계속 보유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저렴한 기축통화’라는 단어 자체가 역설적이다. 이런 역설을 합리화하기 위해 해당 보고서에서는 또다시 정치적 힘을 빌려오고 있다. 바로 미국이 군사적 우산을 제공하는 것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우방국들에 초장기물 (100년) 미국 국채를 사실상 강매하겠다는 것이다. 영구채에 가까운 100년물 국채를 제로 금리 수준으로 발행하고 미국의 우방국들이 이를 매수해 가면, 미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투매를 방지할 수 있고 우방국들은 자국 통화가 필요 이상으로 절상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마러라고 합의에 참여한 국가는 그 폐해(1985년 플라자합의로 탄생했던 엔고 高의 폐해와 같은 사례)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당근책임에도 100년물 초장기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의 리스크(채권 금리 변동으로 인한 가격변동)에 대한 해법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총저축과 총투자, 대외수지
(IMF, 2025년도 전망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빠질 수 있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거시경제학에서 대외수지는 총저축과 총투자(총지출)의 차이로 정의된다. 미국의 대외수지가 만성적 적자를 보이고 있는 이면에는 미국의 낮은 총저축률이 핵심이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소비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탕으로 너무 많은 지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지속해 온 관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미국이 대외수지 적자를 개선하려면 자국 국민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 소비를 조절하고 정책 재원을 확충해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산업에 투입하면 될 일이다. 이 과정이 정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 만 여기에는 고통스러운 경제적 비용(소비 감소와 경기 둔화)이 들기 마련이다. 트럼프는 정석 대신 관세라는 손쉬운 카드를 꺼내 들었고, 그 비용을 무역 상대방들에게 청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전 세계가 비용을 부담하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관세가 무분별하게 시행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는 더욱 짙어질 수 있다. 과거 일반적인 경기침체에서 구원투수는 연준 Fed Put이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높아지는 상황에서 연준의 선택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로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배경이다. 경기둔화와 인플레이션이 상충하는 경우, 중앙은행의 첫 번째 정책 목표는 인플레이션 안정임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