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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JUNE

[LIFE &]Travel Note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축제 열리는
사랑의 도시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베로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태어난 ‘사랑의 도시’이자,
여름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오페라의 도시’다.
게다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유적으로 가득하다.

Editor. 두경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와 베네치아 사이에 자리 잡은 베로나는 보석 같은 소도시다.
베로나 도심은 아디제강이 S자로 가로지르며 흐르고, 그 둘레를 거대한 성벽이 둘러싸고 있다. 도시는 성벽을 기준으로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뉘는데, 구도심은 기원전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과 유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전쟁과 홍수, 지진 등 수많은 부침을 거치면서도 대부분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2000년 베로나는 무려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베로나에 대해 “도시 구조와 건축 면에서 이전 시대 최고의 예술적 요소들을 통합해 2,000년에 걸쳐 꾸준히 발전해온 도시의 뛰어난 사례이며, 유럽 역사에서 여러 중요한 시기를 거치며 발달한 요새 도시의 개념을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놀랍게도 베로나의 역사적 건물들은 유물로 박제되지 않고 길게는 2,000년 넘게 본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베로나를 세계적 음악 도시로 만든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Arena di Verona Opera Festival, (이하 아레나 오페라 축제)’가 1세기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건축된 원형경기장 ‘아레나 디 베로나 Arena di Verona, (이하 아레나)’에서 열리는 식이다.

고대 로마 유적지에서 펼쳐지는
오페라 축제

베로나는 1년 내내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초여름이 되면 더욱 활기를 띤다. 매년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아레나 오페라 축제’가 열려서다. 이 축제는 1913년 8월 10일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처음 개최됐다. 축제에는 고정 프로그램인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포함해 베르디와 푸치니, 비제, 로시니 등 유명 작곡가의 오페라 5~6편이 매년 바뀌어 오른다. 오페라는 무대장치 변환의 수고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다른 작품을 올리는데, 덕분에 베로나에 오래 머물지 않아도 다양한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다.
오페라가 열리는 아레나는 1세기에 만든 경기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한 번에 무려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으로, 로마의 콜로세움, 나폴리의 카푸아 원형극장과 함께 이탈리아 3대 극장으로 꼽힌다. 고대 원형경기장의 대표 주자인 콜로세움보다 40년이나 앞선다. 아레나를 처음 건축했을 당시에는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장으로 쓰였고, 이후에는 사형장, 투우장, 투견장, 연극 공연장 등으로도 이용됐다. 유적지로서 보호받게 된 건 19세기 이후다. 현재는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놀라운 음향을 자랑한다. 야외 공연장이지만 어디에 앉아도 무대에서 나는 작은 소리까지 잘 들릴 정도다.
공연이 없는 기간에 방문했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공연이 없을 때는 아레나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가이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청사로 사용하는 1800년대 건물 바르비에리 궁전Palazzo Barbieri에 둘러싸인 ‘브라 광장Piazza Brà’은 아레나와 더불어 도시의 중심이자 베로나 여행의 시작점이다. 대부분의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나 관광지 순환 버스가 바로 이 광장에서 출발한다. 오페라 축제 기간에는 로비의 기능도 한다. 티켓 박스와 축제 안내소가 들어서고, 관객이 공연 1부와 2부 사이 인터미션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도 쓰인다. 인터미션 시간은 30~40분 정도 넉넉하게 주어지는데, 이 시간 동안 광장에서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며 축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간에 맞춰 주변 카페에서는 여름에 잘 어울리는 상그리아나 맥주, 화이트 와인, 칵테일 등을 판매한다.


2021년 축제 무대에 올랐던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한 장면

오페라 축제의 또 다른 재미는 공연 1부와 2부 사이에 30~40분 정도 주어지는
인터미션이다. 이 시간, 아레나 밖 브라 광장에서는 진정한 축제 분위기가
펼쳐진다.

알고 보면 더 재밌다!

베로나에서 오페라를 관람한다면, 몇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오페라가 밤 9시나 9시 15분 등 늦은 시간에 시작하다 보니 아무리 여름이라도 금방 쌀쌀해진다. 반드시 두꺼운 겉옷이나 무릎 담요를 준비해 가야 한다. 또 아레나 중앙에 위치한 잔디석(골드석)에는 의자가 깔려 있으나, 돌계단인 스탠드 좌석은 그렇지 않다. 3~4시간 정도 되는 오페라 공연을 편히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석이나 돗자리 등 깔고 앉을 것을 준비하는 게 좋다. 반면 골드석에는 드레스 코드가 있어서 격식에 맞춰 의상을 준비해 가야 한다. 보통 여자는 긴 드레스를, 남자는 정장을 입는다.
공연장에 입장할 때는 작은 촛불을 나눠준다. 공연 직전 모든 관객이 일시에 불을 붙여 밝히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휘자와 공연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축제를 처음 시작했던 시대에는 이 촛불의 빛으로 오페라를 감상했다고 전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발코니가 있는 ‘줄리엣의 집’

줄리엣의 무덤은 허구로 만든 관광지이지만, 영화 속 로미오와 줄리엣이 독약을 마신 장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자취를 따라서

베로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도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실존 인물이 아니지만, 지역 이야기를 어느 정도 가미해 작품을 완성했다. 12세기 베로나에는 교황을 지지했던 ‘구엘프파’와 황제를 지지했던 ‘기벨린파’ 사이에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여러 차례 소설로 만들어졌다가 당시 스타 작가였던 셰익스피어에 의해 희곡으로 탄생해 대히트를 쳤다. 희곡에 등장하는 로미오의 집안 몬테키Montecchi 가문과 줄리엣의 집안 카펠레티Cappelletti 가문은 실제로 베로나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다만, 원수 가문은 아니었다.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도 작은 진실을 바탕으로 만든 허구의 공간이다. 건물은 13세기부터 달 카펠로 집안Dal Cappello Family이 살던 작은 중세식 궁이었는데, ‘카펠로’가 극 중 줄리엣 가문의 이름인 ‘카펠레티’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줄리엣의 집’이라 명명되었다. 베로나시는 1907년 이 집을 매입해 줄리엣의 집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 존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코니는 1936년에 14세기의 석관 유물을 가져와 조립해 따로 부착한 것이다. 마당에는 줄리엣의 동상이 있고, 집 내부 박물관에는 19세기 프레스코화와 줄리엣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책상, 1968년에 제작한 영화 속 소품인 줄리엣의 침대와 의상 등이 놓여 있다. 내부를 통해서만 들어설 수 있는 발코니는 대기 줄이 엄청나다.

줄리엣의 집 마당에 있는 줄리엣의 동상. 가슴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줄리엣에게 편지를 써서 넣으면 답장을 받을 수 있는 편지함

줄리엣에게 편지를 쓰면 답장이 온다?!

‘로미오의 집Casa di Romeo’도 있다. 이곳 역시 희곡 속에 등장하는 로미오의 집안, 즉 몬테키 가문이 살던 건물이다. 현재는 사유지라서 들어가 볼 수는 없다. 베로나에는 놀랍게도 ‘줄리엣의 무덤Tomba di Giulietta’도 존재한다. 산 프란체스코 알 코르소 San Francesco al Corso 교회 지하실에 있는 이 무덤은 붉은 대리석 석관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줄리엣과는 상관없는 관이지만, 영화 속 연인이 독약을 마신 장소를 떠올릴 만한 분위기를 풍긴다.
줄리엣에게 편지를 쓰면 배달해준다는 편지함Club di Giulietta도 있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에 등장하기도 한 이 편지함은 실제로 줄리엣에게 편지를 보내면 영화에서처럼 담당 공무원이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보내준다.

고대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로 타임 슬립

베로나는 기원전 89년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됐고, 13~14세기에는 스칼리제르 가문의 통치를 받았으며, 15~18세기에는 베네치아공화국으로 번성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도시 곳곳에서 고대,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베로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불리는 피에트라 다리Ponte Pietra는 무려 기원전 100년경에 세워졌다. 이후 여러 차례 홍수로 유실과 재건축을 반복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무너졌지만, 1957년 원래 자재를 이용해 복구됐다. 이후 여러 차례 재건을 거쳤으나 당시의 형태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리 위에 서서 보는 베로나 풍경이 장관이며, 해 질 녘 조명이 켜지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로마 시대 전성기인 1세기 말에 건설된 로마 극장Roman Theater은 당시엔 실내 극장이었으나 지금은 노천극장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지금도 연극이나 콘서트 등을 개최하는 극장으로 쓰인다. 18세기 베로나 상인이 이 지역을 구입해 발굴 작업을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위에 수도원이 있는데, 이 건물은 이곳에서 출토된 유적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베로나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 중 하나이며, 베로나 시내를 조망하기도 좋은 위치다.

베로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불리는 피에트라 다리는 무려 기원전 100년경에 세워졌다.

1세기 말에 건설된 로마 극장은 18세기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으로 지은 산 체노 마조레 성당Basilica di San Zeno Maggiore은 베로나의 수호성인 체노의 이름을 따 만든 12세기 건물이다. 브론즈 조각의 문, 12세기의 종탑, 로마네스크 회랑(지붕이 있는 긴 복도) 등으로 유명하다. 벽면에 그려진 벽화나 회랑이 있는 내부 정원도 아름다워 시간을 내서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지하에는 성인의 성물이 보관돼 있다.
카스텔베키오 박물관Museo di Castelvecchio과 다리Ponte di Castelvecchio는 아디제 강변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건축물이다. 박물관은 1262년부터 1387년까지 베로나를 통치한 스칼리제르 왕조의 요새로,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았을 때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대피할 수 있게 했다. 베네치아공화국 시절에는 사관학교가 들어섰고, 이후 복원을 거쳐 현재 성 내부는 프레스코화 및 보석, 중세 예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베로나에는 브라, 에르베Erbe, 시뇨리Signori 등 3개의 광장이 유명한데, 그 중 에르베는 광장치고는 작지만 가장 활기 넘치는 구시가지에 있다. 약초를 팔기 시작한 시장이라 ‘에르베(허브)’라는 이름이 붙었다. 평소에도 시장이 열리며 광장 주변에는 젤라토 가게와 레스토랑이 즐비해 잠시 쉬었다 가기 좋다. 광장 중앙의 분수를 중심으로 14~16세기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어 중세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산 체노 마조레 성당은 아름다운 유적으로 가득하다.

한여름 밤의 꿈을 이루다! 2022 베로나 오페라 축제

올해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6월 17일부터 9월 4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에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나부코>, 비제의 <카르멘>, 푸치니의 <투란도트>,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등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며, 갈라 콘서트나 무용 공연 등도 열린다. 올해는 특별히 ‘플라시도 도밍고의 오페라의 밤’(8월 25일)을 만나볼 수 있다. 단, 공연이 밤 9시 혹은 9시 15분에 시작하므로 베로나 시내 호텔에 머물러야 무리가 없다.
예매는 1년 전부터 온라인을 통해 가능하지만, 공연 기간이 길고 좌석이 넉넉한 만큼 현장에서도 표를 구할 수 있다. 티켓 가격은 다른 유럽 오페라 축제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32유로부터 300유로까지 다양하며, 30세 이하와 65세 이상 관객은 좌석에 따라서 10~20% 정도 할인받을 수 있다.
티켓 예매 www.arena.it/arena/en
위치・교통편 우리나라에서 베로나로 가는 직항 항공편은 없다. 베로나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베네치아 마르코폴로 공항’이다. 코로나19 전에는 아시아나 항공에서 베네치아 공항까지 직항편을 운행했으나, 현재는 경유로만 가능하다.
베네치아 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스타치오네 디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역’에 내린 다음, 다시 기차를 타고 1시간 10~30분 정도 이동하면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역’에 닿을 수 있다. 기차역에서 베로나 시내까지는 택시로 10분 정도, 버스로는 20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