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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JUNE

[LIFE &]Art

세계가 주목하는 문경원·전준호의
장기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
News from
Nowhere>

문경원 & 전준호 작가의 대형 개인전이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일본에서 개최하는 가장 큰 규모의 듀오 전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두 작가의 장기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이다.

Writer. 김재석(갤러리현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일본 최대 규모의 듀오 작가전

문경원 & 전준호 작가의 대형 개인전 <미지에서 온 소식 News from Nowhere>이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에서 5월 3일부터 9월 4일까지 열린다. 예술은 “인간 인식의 변화를 위한 기획”이라 말하는 두 작가의 철학과 신념이 녹아든 동명의 장기 프로젝트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하는 자리다. 이번 개인전은 일본에서 개최하는 듀오 작가 전시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미술관의 7개 전시장에서 지난 3여 년 동안 진행한 신작 영상 2점, 가나이와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가나이와 프로젝트>를 비롯해 이들이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 현대차 시리즈’ 작가로 선정되어 참여한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 등 출품작 15점, 북한이 운영하는 해외 식당에서 이 식당을 찾은 남한 화가와 북한 여종업원의 만남을 그린 ‘묘향산관’,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자 가나자와 미술관 소장품인 ‘세상의 저편’ 등을 함께 공개한다.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히로미 구로사와는 이 전시를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그들이 설정한 플랫폼에서 보여 주고, 그것을 학제적 방식으로 검토·비평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한다. 또 이번 전시가 “현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끄집어내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묵상해야 할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자원 고갈, 환경 파괴 등 모든 이슈를 환기시키는 ‘세상의 저편’ 비디오 작품으로 임수정 배우가 함께했다. (El Fin del Mundo, 2012. 2, Channel HD Video Installation with Sound, 13min 35sec.)


장기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을 진행하고 있는 문경원(왼쪽), 전준호 작가

DMZ 배경으로 기형적 세계 조망

이번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2021년 전에서 공개한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 등이 중심을 이룬다. 남측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 ‘자유의 마을’을 배경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 현실을 재인식하고, 나아가 분단과 역사적 상처가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를 어떻게 내면화하는지를 절묘하게 드러낸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조차 표시되지 않는 자유의 마을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7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이 자유의 마을을 두 작가는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빚어낸 독특한 장소로 한정하지 않고, 인류사에서 대립과 갈등으로 탄생한 기형적 세계로서 조망한다. 배우 박정민과 진영이 출연한 영상에는 자유의 마을에서 태어나 한번도 이곳을 떠난 적 없는 한 남성과 미래의 갇힌 환경에서 사는 한 남성이 등장한다. 서로 등을 마주한 2개의 대형 LED 패널, 7개 채널의 서라운드 사운드 설치, 영상과 동기화된 조명, 아카이브 사진을 재구성한 영상, 대형 회화가 어우러져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배우 이정재가 참여한 ‘세상의 저편’의 한 장면 (El Fin del Mundo, 2012. 2.)

남한 화가와 북한 여종업원의 만남을 그린 ‘묘향산관’에 노 개런티로 참여한 배우 고수와 한효주 (Myohyangsangwan, 2014, HD Film, 22min 09sec.)

미술 범주 넓힌 분야별 전문가

문경원과 전준호 작가는 일찍이 동시대 미술이 당면한 위기를 성찰하며 공동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을 진행하고 있다. 각자의 개인 작업에서 예술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문제와 예술의 본질을 끊임없이 질문해 왔기에 두 작가의 공동 작업은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2009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은 2012년 즈음 발표되자마자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세계 최정상의 국제 미술 행사인 카셀 도쿠멘타에 한국 작가로서는 20년 만에 초청을 받은 것이다.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미지에서 온 소식>은 두 작가가 각 분야의 또 다른 예술가라 할 법한 전문가와 긴밀히 협업하며 완성한 영상, 설치, 강연, 장소, 특정 워크숍 등으로 이뤄지는 미술 프로젝트이자 동시대적 삶의 위기를 타파할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교차하고 충돌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타이틀은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사회주의 운동가이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1890년에 쓴 동명의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유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하며, 그와 대조되는 현실 문제를 직시하는 내용으로, 미래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두 작가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재상상하기 위해 두 작가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이 프로젝트에 초청했다. 건축가, 혁신가, 디자이너, 큐레이터, 과학자, 교육자, 의사, 음악가, 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문경원과 전준호의 프로젝트에 공감하며 기꺼이 참여했다.

배우 류준열이 참여한 ‘미지에서 온 소식: Eclipse’ 스틸 컷. 라이프보트에서의 위태로운 삶을 극적으로 담아낸다. (News from Nowhere_Eclipse, 2022,17min.)

진화하는 프로젝트, 세계가 주목

미술의 제한된 범주를 뛰어넘는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지난 10년 동안 카셀을 거쳐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교 설리번갤러리(2013), 스위스 미그로스 현대미술관(201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5), 영국 테이트 리버풀(2018~201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2021) 등으로 장소를 옮기며 진화해왔다.
<미지에서 온 소식>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되, 전시를 개최하는 도시와 특정 환경의 역사를 돌아보는 심도 깊은 조사 연구 과정을 거치며, 전문가는 물론 지역 공동체와도 협업 작업을 병행한다. 시카고 예술대학교 설리번 갤러리의 전시에서는 카셀에서 미처 소화하지 못한 프로젝트의 방대한 리서치와 협업 결과물을 전시 공간 전체로 확장했다. 영국 테이트 리버풀의 전시는 한때 해상무역의 허브로 번영을 누린 한 도시의 성장과 쇠퇴의 역사를 반추하며, 영구 설치되는 맨홀, 전통적 영국식 펍에서 시작해 도시의 역사적 장소를 누비는 카트를 담은 영상 ‘이례적 산책’, 형광 핑크색 조명으로 전시장을 둘러싼 설치 작품 ‘우주에서 온 색채’등을 선보였다. 테이트 리버풀의 큐레이터 타마르 헤머스 Tamar Hemmes는 이 전시가 “모리스의 작품에 담긴 중심 주제를 현시대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우리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며, 우리 미래에 어떻게 반영될지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고 강조했다.

대형 LED 패널, 7개 채널의 서라운드 사운드 설치, 영상과 동기화된 조명 등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 배우 박정민과 진영이 참여했다. (News from Nowhere_Freedom Village, 2021. 2.)

절망 통해 희망을 역설

“세계의 종말 이후 과연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할 것인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예술이라 정의할 것인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질문을 요즘 자주 하게 된다. 전염병의 창궐,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경제 위기와 사회적・문화적 갈등, 그리고 국가 간의 전쟁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뒤엉켜 우리 일상에 그늘을 드리우는 탓이다. 다시 가나자와의 전시장으로 가보자. 관객을 처음 맞는 작품은 <미지에서 온 소식>의 출발점이 되는 ‘세상의 저편’이다. 배우 임수정과 이정재가 각각 미래의 여자와 과거의 남자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두 스크린에 상영되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의 종말을 맞은 듯 폐허가 된 장소에 고립된 한 남자와 SF 영화 속 사이보그처럼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역시 혼자만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을 두 스크린을 통해 동시에 보여준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동시적으로 교감하듯 정교하게 완성한 시간 구조가 무척 인상적인 이 작품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자원 고갈, 환경 파괴, 예술의 동시대적 위기의 모든 이슈를 환기한다.
17분 분량의 신작 영상 ‘미지에서 온 소식: Eclipse’에서 두 작가는 마치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위기 탈출 기회라는 환경학자들의 주장처럼 더욱 절망적인 상황을 설정한다. 배우 류준열이 역할을 맡은 한 남자가 망망대해에서 라이프보트에 의지한 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극적 장면을 담고 있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이번 작업이 “근원적 자유를 향해 회항하고자 하는 인간의 집념과 의지를 그린다”고 설명한다. 절망 속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희망임을 역설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