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ALTH & ]Investment
너무 많은 리스크를
부담하지 말 것
2022년 인플레이션과 경기하강이라는 유례없는 사건들로 많은 투자자가
고통스러운 손실을 겪어야만 했다.
새로운 해로 바뀌었다고 경제 상황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경제 상황에서 투자자 스스로의 판단과 신중한 선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Writer. 박형중(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투자전략팀장)
Photo. 셔터스톡
<매트릭스>의 네오와 금융시장 투자자
영화 <매트릭스> 초반, 주인공 네오는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빨간 약과 파란 약 사이에서 고민하는 네오에게 모피어스는 “빨간 약은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줄 테지만, 파란 약은 이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해줄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매트릭스>를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주인공 네오는 고민 끝에 빨간 약을 택하고, 영화는 새로운 플롯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투자자가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실존적 선택 상황에 처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매 순간 선택을 거듭해야 하고, 선택에 따른 결과를 마주해야 하는 투자자에게는 선택이라는 것이 어쩌면 네오의 그것 보다 더 엄중한 시시포스의 고통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투자자에게 ‘선택’이 일상적 숙명과 같은 것이라면, 해가 바뀐다는 것은 단지 달력에 표시된 숫자가 바뀌는 정도의 사소한 일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과거 40년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그래서 그동안에는 상상조차 하지 않은 사건들이 잇따르며1) 지난 한 해 많은 투자자가 고통스러운 손실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2023년 투자자가 내릴 선택과 결정의 무게감은 그 여느 해와는 다를 것임이 틀림없다. 이 지면에서는 2023년 금융시장이 어떤 모습일지를 매우 간략하게 그려보려 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금융 전문가들의 예측력은 신통치 않다. 여러 실험과 공신력 있는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전문가들의 예측력은 고작해야 원숭이 정도에 불과하거나 그보다도 못하다2)고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또한 더러 시장의 방향성이나 변화를 맞추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원숭이보다 못한 예측력을 가진 언필칭 전문가의 한 사람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필자를 포함한 전문가의 주장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의사결정과 판단의 기준점이나 고민해볼만한 생각 꺼리를 제공해준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 담긴 내용과 결과를 ‘예언’이나 ‘계시’로 받아들이기보다는 2023년 한 해 금융시장에 대한 필자 개인의 ‘판단’이나 ‘예측’ 정도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두 가지 사고실험
우리는 2022년 세계경제가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으로 점철되었고, 그로 인해 금융시장은 약세 국면에 진입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약세장의 끝은 어디일지,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에 대해서는 추측하고 가늠할 뿐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더군다나 세계경제의 핵심적 문제들, 이를테면 기준금리 최종 종착점terminalrate , 경기침체 정도degree of recession, 금융시장 회복력resilience of financial market 등에 따라 앞으로의 주식, 채권 등 금융 가격 변수의 움직임이 가변적 환경에서라면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들을 예단하고 추론한 결과가 정확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선 다음과 같은 단순한 두 가지 경우에 대한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부터 시작해보기로 하자. 첫 번째로 ① 인플레이션은 완화되고, ② 연준(과 주요국 중앙은행)은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고 인하로 선회하는 한편, ③ 경기는 완만한 침체에 그친다고 가정해보자.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치솟은 금리는 하락하고,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risk appetite가 재개될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 사고실험의 결과는 금융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이가 희망하는 것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바라는 시각에서나 공리주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다음 사고실험으로 넘어가보자. 앞의 것에서 조금만 비틀어 ①-1 물가는 상승세가 둔화하지만 여전히 각국의 물가안정 목표인 2%3)를 상회하고, ②-1 연준 (과 주요국 중앙은행)은 고금리 정책을 내년에도 확고하게 견지하며, 이로 인해 ③-1 경기는 침체 국면이 오랜 기간 지속되거나 침체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다고 가정 해보자. 이 경우라면 앞선 사고실험의 결과와는 달리 투자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공산이 크고, 대신 유동성이 높거나 확실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자산에 대한 선호가 늘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앞의 두 가지 사고실험 중 어떤 것이 더 설득력 있고 실현 가능성이 높을지에 대해선 확실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글을 읽고 있는 독자 개개인의 마음속에 다른 것보다 더 선호하는 사고실험의 결과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필자도 앞의 두 가지 사고실험 중 선호하는 것이 있다. 의견을 밝히자면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사고실험을 더 옹호하고 지지한다. 첫 번째 사고 실험의 전제들(상기 ①, ②, ③)은 많은 점에서 일부 사실만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고, 결과만 있을 뿐 과정은 생략 되어 있으며, 세계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너무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2023년 금융시장 회복력은 제약
2023년에는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기준금리 인상) 리스크가 2022년에 비해 한층 꺾일 것이다. 실제로 가장 최근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7.1% 로 1년여 만에 가장 낮았고, 2022년 네 차례 연속 75bp(자이언트 스텝)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던 미국 연준은 2022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폭을 50bp로 낮췄다. 또 2022년 12월 공개된 점도 표의 최종 금리 수준(5.1%)대로라면 넉넉잡아 앞으로 두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 후인 2023년 상반기 정도라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종료4)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한다면 최근 나타나고 있는 변화들은 고무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물가가 하락한다고 해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줄어든다고 해서 향후 금융시장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 우려가 경감하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경기와 유동성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아서 나타나는 결과이고, 또한 성장 전망이 악화함에도 불구하고 완화적 통화 정책으로의 선회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5)은 모두 금융시장에 좋지 않은 징후다. 2023년에는 경기와 높은 금리에 취약한 금융시스템 내 특정 부문은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할 것이며, 이는 금융시장의 회복을 제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2023년 주식과 채권시장은 기껏해야 박스권에 갇히거나,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된다면 지금보다 10% 이상 추가로 자산 가격이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주가 혹은 금융시장은 어느 한 가지 원인에 의해서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본질적으로 금융투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개별 투자자들이 가지는 ‘기대(혹은 전망)’의 확신을 반영하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각자 자신만의 결론을 내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