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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AUGUST

[ WEALTH & ]Investment

미국 대선을 앞둔
연준의 선택은?

연준의 기준금리 방향은 금융시장과 경제의 앞날을 예측해볼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11월에는 미 대선이 있다. 금융시장은 미 대선 전인 9월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남은 FOMC는 이제 4차례다. 목표치를 상회하는 인플레이션과
시장의 기준 금리인하 기대감 속에 연준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Writer.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투자전략팀 Economist)
Photo. 프리픽

버냉키와 파월

금융위기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대공황 Great Depression을 연구했던 세계적인 석학 벤 버냉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버냉키는 그의 독특한 경제적 통찰과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연준을 이끌며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췄고 전례 없는 규모의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 QE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버냉키가 과감하게 도입했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은행 시스템은 안정됐고, 경제 회복이 촉진됐다. 버냉키가 시행했던 정책 상당수는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다시 도입되는 등 지금까지도 경제 위기 시 전 세계 여러 중앙은행에 참고가 되고 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듯 버냉키의 정책을 모두 반겼던 것은 아니다. 그의 조치들은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연준 내부에서까지 양적완화 정책에 반발하는 기류가 상당했다.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이는 당시 연준 이사였던 제롬 파월 Jerome Powell과 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총재였던 토머스 호니그 Thomas Hoenig가 대표적이다. 특히 파월은 연판장까지 작성하며 연준 위원 상당수의 동의를 이끌어내, 버냉키의 급진적 통화정책을 좌초시키려 했다. 그러나 버냉키의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덕분에 파월도 결국 양적완화 정책에 찬성하게 됐고, 양적완화 정책은 버냉키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었다. 한편 호니그는 다른 연준 위원들이 양적완화 찬성으로 돌아선 뒤에도 끝까지 양적완화 정책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는데, 그로 인해 그는 디센터 Dissenter(이견을 제기하는 사람 혹은 동의하지 않는 사람)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 연준 의장은 파월이다.
이제 파월은 그에게 반대하는 연준 인사들을 설득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과거 버냉키 연준 의장이 반대파였던 파월을 설득해 정책을 추진했던 것처럼,
이제는 그 역할이 파월에게 맡겨진 것이다.

다시 파월, 의심받는 리더십

연방준비제도는 매해 배출되는 경제학 박사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단일 기관으로, 경제학 박사가 가장 많이 근무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수많은 관점과 시각이 존재하고, 때로는 타협할 수 없는 경제철학적 차이가 부각되기도 하는 이곳에서 연준 의장은 통화정책의 의제를 설정하고,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 최종 합의를 도출해야만 한다. 어쩌면 연준 의장만큼 리더십이라는 미덕이 중요한 자리도 많지 않을 것이다.
현 연준 의장은 파월이다. 이제 파월은 그에게 반대하는 연준 인사들을 설득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과거 버냉키 연준 의장이 반대파였던 파월을 설득해 정책을 추진했던 것처럼, 이제는 그 역할이 파월에게 맡겨진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파월과 연준 내 다수 위원들의 입장 차가 선명해지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파월은 지난해 12월부터 기준금리 인하에 경도된 발언을 이어 오고 있는 반면에 과반수를 넘는 연준 위원은 올해 기준금리 인하가 없거나,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한차례에 그칠 것으로 보는 매파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연준 내 컨센서스가 형성되지 않은 탓으로도 볼 수 있지만 지난해 말부터 파월이 꾸준히 완화적 통화정책 시그널을 암시했던 사실을 돌이켜보면 그가 연준 위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기준금리 인하를 둘러싼 연준 내부의 이견이 단기에 봉합되지 않고 더 오래 지속된다면, 이는 단순한 의견 대립을 넘어 파월의 리더십을 불신하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될 수도 있다. 이미 이와 같은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파월이 선호하는 통화정책이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있어서다. 파월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다. 한데 트럼프는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더 낮은 금리를 요구하며 연준과 파월에게 공개적으로 정치적 압력을 가한 경험이 있다. 비록 파월이 경제적 논리에 기반을 두고 기준금리 인하 주장을 펴고 있더라도, 올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그의 입장은 대선 전 경기부양을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기준금리 인하를 둘러싼 연준 내부의 이견이 단기에 봉합되지 않고 더 오래 지속된다면,
이는 단순한 의견 대립을 넘어 파월의 리더십을 불신하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될 수도 있다.
이미 이와 같은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파월이 선호하는 통화정책이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있어서다.

미 대선과 연준의 독립성

‘연준에 맞서지 말라’는 증시 격언이 무색하리만치 지난해부터 금융시장은 연준의 가이던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이어왔다. 기준 금리 인하에 대한 금융시장의 기대가 유지된 탓에 주가는 큰 조정 없이 지난해부터 상승 기조가 지속됐다. 이는 금융시장의 영향력이 커진 탓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준의 전망에 대한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신뢰가 그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연준의 영향력이 이전만 못한 환경에서 연준은 올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인지, 인하한다면 대선 전에 할지 대선 후에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2024년에 남아 있는 FOMC는 이제 네 번(대선 전 두 번, 대선 후 두 번) 뿐이다. 고용시장의 냉각, 중소득층 이하의 경제적 어려움이 부상한다면 연준은 경기연착륙을 유도하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물가 안정 목표를 상회하는 높은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확대, 유력 대선 후보들의 보호무역 및 자국 우선주의 성향은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파월은 연준 다수 위원들을 설득해 대선 전인 9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전에 연준은 상충하는 경제 신호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통화정책 수행의 우선순위(경기 vs 물가)를 명확하게 알려 시장 참가자에게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미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연준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효과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기준금리 인하가 경제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대신 되레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