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NIOR & ]Signature Hole
사우스스프링스CC
아름다운 풍광 속에 숨은
벙커 108개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의 멋을 살린
사우스스프링스CC.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홀마다 배치된 벙커다. 불교의 108번뇌를 연상케 하는
108개 벙커가 골퍼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리며
승부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Writer. 조수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Photo. 사우스스프링스CC
대한민국 시그너처 홀
대한민국에는 540개가 넘는 골프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골프장에는 오너와 설계자가 가장 공을 들인, 그 골프장의 ‘얼굴’이라 할 홀이 있습니다.
적게는 18홀, 많게는 81홀 가운데 가장 멋진 딱 한 홀, 바로 ‘시그너처 홀’입니다.
2023년에는 한국경제신문과 함께 명문 골프장의 명품 홀을 소개합니다.
워터 해저드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물이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애써 못 본 척 마인드 컨트롤을 해봐도 큼지막한 입을 벌리고 있는 연못에 눈이 가는 순간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린이 물에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이라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아름답기까지 하면 샷에 집중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경기 이천의 명문 골프장 사우스스프링스CC의 시그너처 홀은 레이크 8번 홀이다. 멋스럽기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일랜드 파 3홀로, 청초록색 연못 위에 떠 있는 그린의 양쪽 옆구리와 뒤에는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핀은 중핀, 화이트 티에서 140m, 레드에서는 95m 거리다. 하지만 10m 내리막을 감안해야 한다. 핀보다 길게 공이 떨어지면 그린 뒤 해저드로 흘러가고, 짧으면 그린 앞에 있는 2개 벙커에 빠지기 십상이다. ‘백팔번뇌’로 불리는 사우스스프링스의 108개 벙커 중 2개다. 자칫 홈런을 치면 그린 반대편 물에 들어가는 만큼 스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티 샷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번뇌가 찾아왔다.
자연의 멋을 살린 골프장
사우스스프링스CC는 원래 휘닉스스프링스CC란 이름의 고급 회원제 골프장으로 2009년 개장했다. 2016년 보광그룹에서 형제 회사인 BGF 그룹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대중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2021년 사모펀드 센트로이드 PE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인수 가격은 당시 국내 골프장 거래 최고가인 홀당 96억 5,000만원이었다. 주인이 두 번 바뀌고 회원제에서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했지만, 명문 골프장으로서의 명성은 잃지 않았다.
이 골프장이 왜 명문인지는 페어웨이 잔디를 밟는 순간 알 수 있다. 짧고 빳빳한 잔디가 빽빽하게 식재된 덕분에 쇼트 티 위에 공을 올려놓고 치는 느낌이 든다. 에버랜드(삼성물산 리조트 부문)가 한국 골프장 환경에 맞게 개발한 잔디인 ‘안양중지’다. 안양CC, 가평베네스트CC, 안성베 네스트CC 등 삼성 계열 골프장에 깔린 바로 그 잔디다. 잎이 넓은 한국 잔디와 좁은 양잔디의 장점을 합친 것. 삼성의 사돈 그룹인 보광도 이 골프장을 만들 때 안양중지를 도입했다. 지금도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에 소속된 잔디 환경 연구소가 시즌마다 코스를 방문해 잔디 상태를 관리한다. 코스는 원래 있던 자연을 그대로 살렸다. 어디를 둘러봐도 억지로 산을 깎거나 흙을 쌓아 올린 법면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린에서 페어웨이를 돌아보면 자연 그대로의 곡선미를 느낄 수 있다. 원형 녹지 보전율이 60.8%에 달한다. 개장한지 20여 년밖에 안됐는데도 오래된 골프장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스 전반에 걸쳐 심어놓은 1200여 그루의 적송赤松은 골프장의 기품을 더한다.
아름다운 풍광에 지형도 완만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코스다. 전장은 길고 그린은 빠르다. 거리와 정확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 불교의 백팔번뇌에서 착안한 108개 벙커는 공이 떨어질 만한 곳마다 어김없이 놓여 있다. 그래서 사우스스프링스CC를 경험한 아마추어 골퍼 중 상당수는 “오늘 친 샷의 절반이 벙커 샷”이란 후기를 남긴다.
모래만큼이나 물도 많다. 레이크 코스에는 워터 해저드가 무려 7개나 있다. 동반한 캐디는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평소 스코어보다 10타 정도 더 나온다 생각하고 편안하게 치라”라며 “백팔번뇌를 내려놓지 못하면, 해탈하지 않으면 이 골프장을 즐길 수 없다”라고 조언했다.
프로에게도 사우스스프링스CC는 만만찮은 코스였다. 한국여자프로골프 KLPGA 투어 E1 채리티 오픈이 2020년부터 3년간 이곳에서 열렸는데, 매해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2021년 지한솔이 18언더파라는 화려한 플레이로 우승한 반면, 2022년 대회에서는 이소영, 정윤지, 지한솔, 하민송이 나란히 최종 합계 8언더파를 쳐 5차 연장전 끝에 정윤지가 우승했다. 코스 세팅에 따라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질 수 있는 코스인 셈이다.
사우스스프링스CC의 시그너처 홀, 레이크 8번 홀
한옥 게스트 하우스 ‘파지오 하우스’
이 골프장의 또 다른 명물은 게스트 하우스 ‘파지오 하우스’다. 코스 설계자 짐 파지오의 이름을 딴 건물로, 국내 골프장이 설계자 이름을 내세우는 건 국내에선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사우스스프링스CC가 명문 코스로 인정받는데 파지오의 역할이 컸다는 의미다.
짐 파지오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골프장 설계의 명문 집안 출신이다. 그의 삼촌인 조지 파지오는 1940~1950년대 미국프로골프 PGA 투어를 뛴 유명 골프 선수다. 선수 은퇴 후 골프 코스 설계에 뛰어들었다. 짐 파지오는 삼촌 영향을 받아 19세인 1980년부터 골프 코스 설계 일을 했다. 그가 설계한 가장 유명한 골프장은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이다. 그는 몇 년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전 미국 대통령)는 골프장 설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주말마다 현장을 방문해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주문했다”라며 “골프장에 좋은 주문은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의 동생 톰 파지오는 형보다 더 유명하다. <골프 다이제 스트>가 선정한 미국 200대 골프장 중 46개를 설계한 덕분에 ‘골프장 설계의 피카소’로 일컫는다. 지난 10월 CJ 컵이 열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리지 랜드의 콩가리 골프장도 그의 작품이다. CJ는 3년 연속 톰 파지오가 설계한 코스에서 CJ컵을 열었다.
2020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섀도 크리크, 지난해 라스베이거스의 더 서밋 클럽 등도 톰 파지오의 손을 거쳤다.
한옥 스타일의 게스트 하우스, 파지오 하우스
백팔번뇌를 내려놓고 해탈의 플레이
8번 아이언을 꺼내 들었다. 물 앞에서 위축될 걸 생각하고 조금 넉넉하게 클럽을 잡았다. 그러면서도 “물은 없다, 물은 없다”라고 스스로에게 세뇌했다.
핀은 그린의 정중앙, 티 그라운드에서 보기에는 약간 오른쪽이다. 핀을 직접 노렸다가 조금이라도 밀리면 그린 중앙까지 파고든 오른쪽 벙커에 빠질 게 뻔했다. 그래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심호흡을 한 뒤 다리에 힘을 주고 골반을 돌렸다. 찰싹, 기분 좋은 손맛과 함께 공이 똑바로 날아갔다. 거리도 잘 맞았다. 딱 바라본 대로 날아간 공을 보며 뒤늦게 ‘이럴 줄 알았으면 핀을 곧바로 노릴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공은 그린 왼쪽 끝에 떨어졌다. 아슬아슬한 ‘온 그린’, 15m 오르막 퍼팅이 남았다.
“뒤를 한번 돌아보세요. 갤러리가 많답니다.” 퍼팅 라인을 읽는데 함께 라운드 한 송대영 사우스스프링스CC 이사가 뒤쪽 언덕을 가리켰다. 그곳엔 20여 개의 석상 石像이 그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골프장엔 이런 석상이 230여 개나 있다. 보광그룹이 골프장을 지을 때 지관地官의 권유로 나쁜 기운을 막는 석상을 코스 이곳저곳에 배치했다고 한다. ‘석상 갤러리’들의 응원을 받으며 버디 퍼트를 시도했지만, 홀 1m 앞에서 멈췄다. 동반자들의 너그러운 컨시드를 받고 파로 마무리. 티 샷 하기 전의 번뇌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는 10월에는 2년 만에 KLPGA 투어가 이곳에서 열린다. 올해로 2회를 맞는 상상인·한경TV 와우넷 오픈에는 박현경, 윤이나, 이예원 등 올 시즌 가장 뜨거운 선수들이 총출동할 예정이다. 총상금 12억 원이 걸린 메이저급 대회로, 올 시즌 대상·상금왕 경쟁에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마운틴 6번 홀
Information
규모 18홀 7226yd(6607m2)
주소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 64
그린피 주중 20만원/ 주말 27만원
(요일, 시간대에 따라 상이함)
문의 031-630-7000
홈페이지 www.ssc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