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 ]Resort
도쿄가 말하는 럭셔리
스테이케이션 in 도쿄
한국에는 없고, 도쿄에만 있다. 세계적인 하이엔드
리조트와 럭셔리 호텔 브랜드가 모여드는 도시,
호캉스의 명소로 떠오른 도쿄로 향했다.
Editor. 김은아
아자부다이 힐스에서의 하루
자누 도쿄
자누는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을 뜻한다. 이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물리적인 휴식을 넘어, 영혼이 차오르는 휴식을 선사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요즘 직장인 사이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영혼 없음’병도 이곳에서 치유할 수 있을까?
호텔을 한 바퀴 둘러보며 느낀 것은 활기다. 짙은 남색의 포인트 컬러, 복도 곳곳에 놓인 화사한 분재, 싱싱한 해산물 쇼케이스로 떠들썩한 생기가 가득한 레스토랑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로비와 식음 업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아자부다이 힐스의 풍경도 한몫한다. 라이브 연주와 플리 마켓이 열리는 공원과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의 활기가 호텔 안으로 스며든다.
자누가 특별히 공들인 것은 웰니스 시설이다. 무려 4층에 걸쳐 스파와 피트니스센터, 수영장을 만들었다. 도쿄에 단 3대밖에 없다는 운동기구 ‘아웃레이스’를 보유하고, 복싱링까지 설치했다. 투숙객을 위한 무료 클래스도 열린다. 코치가 일대일로 강습하는 아웃레이스 수업은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떠올리게 할 만큼 고강도로 진행됐다. 겨우 30분 수업을 마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지만, 머리는 도파민으로 차오른다. 이것이 자누가 영혼을 충만하게 채우는 방식인가 보다. 이곳의 진가는 해가 지면 드러난다. 명품 숍들의 화려한 불빛이 꺼지고, 정원을 가득 채웠던 인파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다. 고요한 아자부다이 힐스를 나만의 정원으로 독점할 수 있다. 도쿄타워의 조명을 가로등 삼아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공들여 만든 곡선을 여유로이 감상하는 호사가 주어진다.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온 사이 객실의 조명이 어스름히 바뀌어 있다.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객실을 정리해 주는 턴다운 서비스다. 침대 머리맡에는 생수가, 시트 위에는 파자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보드라운 리넨 소재로 새 옷처럼 반듯하다. 낮에 호텔을 안내해 주는 홍보팀 담당자에게 질문했다. 왜 굳이 관리하기 까다로운 소재를 고른 것이냐고. 홍보마케팅 매니저 가오리 상이 답했다. “그것이 손님을 향한 정성”이라고. 이렇게 일상에 정성을 다하는 법을 배운다.
₩ 13만1,000엔부터(약 114만원)
⌂ www.janu.com/janu-tokyo
단절이 선사하는 환상의 시간
호시노야 도쿄
로비의 육중한 측백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긴 복도가 펼쳐진다. 기모노와 나막신으로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었다. 호시노야는 바닥 전체에 다다미가 깔려 있어 맨발로 호텔을 누빌 수 있다. 알고 보니 이는 호시노야가 설계한 일종의 의식이다. 신발을 벗음으로써 바깥 공간, 즉 일상과의 단절을 유도한다. 이런 장치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뷰’가 없다는 것. 호시노야의 모든 창문은 창호지로 가려져 있다. 일부러 열지 않으면 바깥 풍경을 전혀 볼 수 없다. 섬세하게 조명을 설계한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러한 단절이 선사하는 것은 오롯한 휴식이다. 숨 가쁜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호흡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호시노야 도쿄는 투숙객이 일본 전통 온천 숙소인 료칸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기를 바랐다. 좌식으로 설계한 방, 전통 패턴과 소재를 적용한 객실도 그렇다. 꼭대기 층에는 하늘을 바라보며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야외 온천도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식사다. 지역의 특산물로 정찬을 대접하는 것이 료칸의 문화다. 아침 식사는 객실로 제공하고, 저녁 식사는 호텔 지하의 파인 다이닝에서 한다. 세토우치산 캐비아, 구마모토산 말고기, 도야마의 백새우와 오징어 등 전국의 제철 특산물로 구성한 코스는 퍼포먼스 요소를 더해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즉석에서 재료를 섞어
덮밥을 만들고, 눈앞에서 조개 육수로 만든 소스를 끓여 얹어주는 식이다.
호텔은 투숙객이 로컬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자는 20여 분간 진행되는 다도 수업에 참여했다. 정갈한 기모노 차림의 선생님이 일본 차의 종류부터 차를 만들고 마시는 법까지 차 예절을 자세히 안내했다. 예절에 맞게 무릎을 꿇고, 세 번에 걸쳐 후루룩 소리를 내며 차를 마시는 경험은 생소했지만 현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박 2일간 머무르고 현관으로 나가는 길. 기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신발을 내준 직원이 비가 온다며 우산까지 쥐여준다. 호시노야의 시간에 푹 빠져 있었던 탓일까. 겨우 하루 만인데 바깥 길이 낯설다. 잠시 시대극 속의 세상에 들어와 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 23만3,000엔부터(약 203만원)
⌂ hoshinoresorts.com/ja/hotels/hoshinoyatokyo
요즘 럭셔리, 콰이어트 럭셔리
에디션 도라노몬, 에디션 긴자
럭셔리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호화롭고 번쩍이며 과시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는 지나고, 요즘은 뽐내지 않는 ‘콰이어트 럭셔리’의 시대다. 에디션은 ‘요즘 럭셔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에디션은 부티크 호텔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이언 슈레거가 론칭한 브랜드다. 30여 개 호텔 브랜드를 가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에서도 최상위 등급에 해당한다. 전 세계 20여 곳에 지점을 두고 있는데, 도쿄에만 2개의 지점이 있다.
에디션의 브랜드 철학은 간결한 것이 아름답다는 뜻의 ‘레스 이즈 모어 Less is more’다. 객실에 들어서면 이 문장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침대와 테이블, 소파 등 모든 가구를 흰색으로 통일했고, 모든 요소가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맞물린다. 깨끗하다 못해 새침하게 느껴질 정도다. 객실에서는 오직 쉼 자체에만 집중하라는 의도다. 침대 위 흐트러진 갈색 담요만이 인간미를 전한다. 이는 이언 슈레거의 재치가 느껴지는 소품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구겨진 코트를 만지며 안정감을 찾던 기억을 담아, 객실이 집처럼 포근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공용 공간은 객실과는 사뭇 대조되는 분위기다. 생동감 넘치는 색을 과감하게 사용하고, 식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다. 대나무를 시그너처 재료처럼 사용하는 그는 호텔 로비를 식물로 가득 채웠다. 긴자에서는 호텔 외벽을, 도라노몬에선 로비를 식물로 채웠다. 분명 에디션은 기존 호텔의 문법과는 다르다. 취향별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다. 에디션 도쿄 도라노몬의 객실 디렉터 코니 송이 들려준 한 부자父子의 일화는 이를 보여준다. 리츠칼튼의 VIP였던 50대 남성이 20대 아들과 함께 에디션을 찾은 것. 전통적인 호텔에 익숙한 아버지는 “뭐가 이렇게 없냐”며 불만을 토로한 반면, 아들은 “슈퍼 쿨” 하다며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에서만 시간을 보냈다고. 이곳에서 절제의 아름다움을 읽어낸다면 에디션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취향과 영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때로 호텔은 배움의 공간이 되기도 하니까. 새로운 세대의 럭셔리에 대한 경험의 지평만큼은 확실히 넓어질 것이다.
₩ 5만800엔부터(약 131만원)
⌂ www.editionhotels.com/tokyo-ginza
아만만이 제공할 수 있는 럭셔리
아만 도쿄
아만은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지만, 럭셔리 호텔을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브랜드다. 프라이빗 한 공간 설계와 시간을 가리지 않는 밀착 서비스를 제공해 재벌과 셀러브리티들이 아만의 골수팬을 뜻하는 ‘아만 정키’를 자처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크 저커 버그가 대표적인 아만 정키다. 이들이 그토록 아만을 사랑하는 이유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로비의 문이 열리는 순간, 무장해제의 탄성이 터졌다.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건물 6층 높이(30m)의 천장. 일본 전통 조명에서 모티브를 딴 흰색 천장은 그야말로 ‘장중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이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건축물에 반영하는 데 특출난 재주가 있는 건축가 케리 힐의 솜씨다. 그는 일본 전통 가옥의 요소와 함께 그 안의 정신도 호텔에 담아냈다.
대표적인 것이 숲이다. 일본 전통 가옥에서 정원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케리 힐은 도쿄 교외에 부지를 구입해 나무와 식물을 심고 3년간 가꾼 뒤 이를 통째로 옮겨왔다. 그 덕분에 도심 한가운데서도 숲속으로 휴양을 떠나온 듯 푸르름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객실도 예외는 아니다.
창호지로 된 미닫이문, 전통 가옥의 주재료인 물푸레나무와 음나무로 구성한 공간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다만 무엇 하나 튀는 것이 없다. 조화롭지만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요소는 없다. 그럴 때 눈에 띈 것 하나. 모든 가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널찍한 창을 향해서다.
창밖으로는 도쿄의 풍경이 한가득 펼쳐진다. 앞으로는 일왕의 거처가 있는 거대한 숲이, 뒤로는 빼곡한 고층 빌딩 숲이 펼쳐진다. 날이 맑은 날에는 저 멀리 후지산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일부러 그린 듯이 풍성하고 짜임새 있는 풍경이 마치 거대한 액자 속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특별한 점이다.
비로소 절제된 디자인의 이유를 깨닫는다. 미니멀한 객실과 화려한 풍경의 대조는 역설적으로 양쪽 모두를 도드라지게 만든다. 전시 작품에만 핀 조명을 비추고, 나머지 공간은 어둡게 유지하는 미술관처럼. 아만에서는 번잡한 도시로 나갈 필요가 없다. 나의 방 안에 도시를 통째로 들여놓았으니. 그것이 아만에서 누릴 수 있는 럭셔리다.
₩ 22만 엔부터(약 191만원)
⌂ www.aman.com/hotels/aman-tok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