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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APRIL

[ LIFE & ]도시를 바꾸는 현대 건축가 ②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는
‘뉴 럭셔리’ 호텔의 거장

빌 벤슬리 Bill Bensle

‘이상할수록 좋다!(The odder, the better!)’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인테리어·조경 디자이너 빌 벤슬리의 철학이다.
세계 호텔 디자인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는 30개국에서 200개 이상의
호텔과 리조트 프로젝트를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완성해
전 세계를 매혹해왔다.

Editor. 두경아
Referance . 디자인 스튜디오 벤슬리

건축가, 조경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토리텔러, 컬렉터, 화가…. 모두 빌 벤슬리가 가진 타이틀이다. 빌 벤슬리는 방콕과 발리에 기반을 둔 디자인 스튜디오 ‘벤슬리BENSLEY ’의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럭셔리 리조트의 건축·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담당한다. 베트남의 ‘인터컨티넨탈 다낭’, 인도네시아 발리의 ‘카펠라 우붓’, 태국 방콕의 ‘더 시암’을 비롯해 전 세계 30개국, 200개 이상의 호텔과 리조트 프로젝트를 지휘해왔다.
건축가이기보다 멀티 디자이너에 가까운 그는 방콕과 발리에 차례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고 동남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은 조경 스튜디오로 출발했으나 점차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모두 소화해 내는 스튜디오로 성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건축물과 정원, 냅킨 링과 간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디테일에 집중하는 것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진행한 호텔 프로젝트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스토리텔링, 맥시멀리즘, 뉴 럭셔리다. 우선 그는 스토리텔링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는데, 그럴듯한 이야기로 호텔의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구축한 세계관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수집하는 소품과 오브제로 완성된다.


빌 벤슬리는 화려한 리조트와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다.


그는 “먼저 사고 나중에 생각하자”라는 마음으로 쓸모없다 싶은 물건까지 모으는데, 이것들이 바로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는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과 ‘자연과의 공존’을 건축 철학으로 삼아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는 건축가다. 이른바 뉴 럭셔리로, 포시즌스 코사무이 리조트는 코코넛 나무 856그루를 모두 온전하게 유지하며 건물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환경을 신경 쓰지 않는 과거의 럭셔리는 죽었다”라고 말한다.


천연덕스러운 스토리텔링의 최고봉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 & 스파

1880년대 푸꾸옥에 있었던 라마르크 대학을 주제로 조성한 리조트 전경. 모두 빌 벤슬리가 지어낸 이야기다.

빌 벤슬리의 파격적이고 과감한 미감은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 & 스파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먼저 호텔에 얽힌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1880년대 베트남 푸꾸옥에는 프랑스인과 지역 주민의 자녀들이 주로 다니던 라마르크 대학이 있었다. 이 대학은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에서 우승까지 거머쥐며 스포츠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문을 닫았다. 이 대학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호텔이 바로 JW 메리어트 푸꾸옥이다. 그러나 라마르크 대학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모두 벤슬리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관이다.
그는 푸꾸옥에 프랑스인이 세운 대학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 듣고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이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호텔을 완성했다. 이야기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드는 장치는 수많은 소품이다. 그는 프랑스의 벼룩시장과 골동품 시장 등을 뒤져 컨테이너 약 50대 분량의 소품을 구입해 호텔을 장식했다. 실제 대학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객실은 강의실처럼, 레스토랑은 학장 사택처럼, 스파는 버섯균 보관실처럼, 바는 화학 실험실처럼 꾸몄다. 객실이 있는 건물은 농업학과·순수미술학과·동물학과·천문학과 등을 콘셉트로 구성했다.

화학과 학생들의 실험실로 꾸민 칵테일 바. 각종 실험 도구가 놓여 있는 가운데, 하얀 실험복을 입은 직원들이 서빙한다.

모든 객실은 대학 각 학과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주제를 바탕으로 디자인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더 충만한 자연

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잘 보존된 자연 속에 들어선 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베트남 다낭의 손짜 반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리조트. 베트남의 국가 보호구역으로서 3km에 달하는 천연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드넓은 바다로 둘러 싸인 이곳은 빌 벤슬리가 설계한 동남아시아 최초 리조트다. 이곳은 현대적 감각과 베트남풍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벤슬리가 리조트 설계를 위해 베트남의 모든 절을 방문할 정도로 열정을 쏟은 덕분이다. 최근 인터컨티넨탈 다낭은 또다시 빌 벤슬리와 손잡고 10년 만의 레노베이션을 단행해 새롭게 단장했다. 그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객실, 웰니스 문화, 보존에 대한 새로운 관점 등을 담아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무엇보다 벤슬리가 염두에 둔 지점은 바로 ‘자연’이다. 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리조트가 위치한 손짜 반도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지역으로, 그들의 터전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설계의 관건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 지역의 산림은 더욱 울창해졌다.
손짜 반도의 산기슭을 따라 조성된 39만㎡ 규모의 리조트는 201개 객실을 갖췄다. 독립적으로 설계된 모든 객실에서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울창한 산림과 조화를 이루는 패밀리 풀 오아시스

손짜 반도의 산기슭에 위치한 덕분에 모든 객실에서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다.



나무 하나 훼손하지 않은 대자연 속 글램핑 리조트

카펠라 우붓

열대우림 속에 들어선 카펠라 우붓은 공사 과정에서 나무 한 그루 베지 않고 지었다.

발리의 정통 예술가 마을 켈리키 열대우림 사이에 위치한 카펠라 우붓은 빌 벤슬리다운 독보적 건축물로 평가받는 호텔이다. 벤슬리는 1800년대 초기 유럽 정착민들에게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고 한다. 탐험가처럼 밀림 사이로 들어가다 보면, ‘대자연 속 글램핑 리조트’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리조트를 만나게 된다.
객실은 단 23개로, 모두 독채형 텐트다.
애초 계획은 130개의 객실을 갖춘 럭셔리 리조트였지만, 계단식으로 이어진 독특한 지형과 천혜의 열대우림에 영감을 받은 벤슬리의 제안으로 이 같은 형태의 독특한 리조트가 탄생했다. 열대우림 속에 존재하지만, 공사 과정에서 나무를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지어졌다고 한다.
이 덕분에 여행객은 럭셔리 리조트에 머무르면서도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즐기는 경험이 가능하다. 리조트 내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기차역, 시계탑 등 인도네시아 역사를 보여주는 소품들이 놓여 있어 호텔을 거닐며 독특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호텔 객실은 탐험가의 방, 지도 제작가의 방 등 각기 다른 콘셉트로 구성 했다.

세련된 리조트에 머물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

호텔 객실은 탐험가의 방, 지도 제작가의 방 등 각기 다른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화려한 오페라 속 주인공이 되는 경험

카펠라 하노이

베트남 호안끼엠 호숫가에 위치한 카펠라 하노이는 1920년대 식민지 시절 전성기를 누렸던 하노이 오페라하우스를 모티브로 삼아 설계했다. 하노이 오페라하우스 인근에 위치한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빌 벤슬리는 호텔 전체를 1,000여 점의 오페라 관련 소품으로 장식해 여행객에게 마치 오페라 주인공이 된 듯 독특 한 경험을 선사한다. 47개의 객실은 오페라를 주제로 설계됐으며, 각 방에는 오페라 속 분위기로 음악 세계를 담은 독특한 장식과 무대의상, 수천 점의 골동품이 즐비하고, 오페라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이 배치돼 있다.



유채꽃과 현무암, 지역 전설을 품다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

제주 하면 떠올리는 현무암, 귤, 올레길 등을 모티브 삼아 디자인한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

호텔 객실은 탐험가의 방, 지도 제작가의 방 등 각기 다른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제주도 서귀포 올레 7코스 자락에 들어선 JW 메리어트 제주는 빌 벤슬리가 설계와 디자인을 맡은 국내 첫 호텔이다. 빌 벤슬리는 제주를 방문했을 때 섬 곳곳에 흐트러지게 핀 고운 유채꽃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를 호텔 디자인에 적용했다고 한다. 리조트 디자인을 위해 한국만의 색채를 연구하던 중 노란색이 행운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리조트 디자인의 주요 색상으로 ‘노란색’을 적용한 것이다. 화산섬인 제주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회색과 검은색, 흰색 등도 함께 녹여냈다.
그는 또한 제주하면 떠올리는 유채꽃과 바람, 현무암, 귤, 올 레길 등이 호텔에 잘 녹아들게 했다. 그중 하나가 여우 전설을 품은 ‘여우물’이다. 여우물은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작은 연못을 이룬 것인데, 호텔 부지에 있는 여우물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동시에 제주 역사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다. 리조트 수영장을 둘러싼 나무들 역시 보호종으로 지정된 소나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