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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JUNE

[SPECIAL THEME]Trend

그린 슈머 파워

기업에 이제 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 그린 슈머가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Writer. 유나리

성장, 소비 등 기존 기업이 추구하던 지향점과 조금 다른 행보로 뜬 브랜드가 있다.
바로 소비자에게 오히려 “이 재킷을 사지 말라Don’t buy this jacket”고 말한 파타고니아다. 이 슬로건은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에 내걸었던 것으로, 브랜드를 설명할 때 꼭 등장하는 문구가 됐다.
파타고니아는 “아무리 이 옷을 오래 입다 버려도 완성품의 3분의 2는 쓰레기가 된다”며 “재킷 한 벌에 들어가는 목화를 생산하기 위해 135L의 물이 필요하다”는 등의 환경적 메시지를 함께 던졌다. 이 고도의 마케팅 결과는 대성공. 오히려 브랜드가 환경을 이렇게 걱정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파타고니아는 흔한 아웃도어 브랜드 중 하나에서 단박에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며 기존 흐름과 다르게 가는, 앞서 있는 브랜드라는 포지션을 꿰찼다.
파타고니아의 사례는 그린 슈머의 부상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사례다. 이제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의 상징’이자 트렌디한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 사람들은 기왕이면 더 젊고 의식 있어 보이는 브랜드를 선택한다. 실제 파타고니아의 국내 매출은 2021년까지 3년간 매년 35%씩 증가했다. 이게 바로 그린 슈머의 힘이다.

마켓컬리는 친환경 배송을 위해 2019년부터 모든 배송 포장을 종이로 변경하는 ‘올 페이퍼 챌린지’를 진행 중이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올 페이퍼 챌린지 시행으로 연간 4,831톤의 플라스틱을 절감했다고.

100% 사탕수수 섬유로 제작해 땅에 묻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현대백화점의 종이 박스

지금은 그린 슈머 시대

한국경제신문과 입소스코리아가 15~64세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그린 슈머는 SNS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실재하며, 행동한다. ‘제품을 구매할 때 기업의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받나’라는 질문엔 60%가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고, 16%가 ‘매우 영향을 받는다’고 언급했다. ‘신뢰하는 기업과 브랜드에 어떤 반응을 보이나’라는 질문엔 66%가 ‘비싸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 62%가 ‘지인에게 추천한다’고 답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ESG 트렌드가 확산하며, 그린 슈머의 영향력 또한 꾸준히 확대될 것이라 전망한다. 설문에서 밝혀졌듯 가치를 따져 소비하는 그린 슈머의 브랜드 충성도는 꽤 높은 편이다. 이들의 흐름은 이제 기업이 간과할 수 없는 주요 영역이 됐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리필 제품을 파는 그린 스테이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리필 스테이션 이용 고객은 2020년 월평균 1,000명 내외에서 지난해 1만5,000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롯데칠성음료가 2020년 국내 최초로 선보인 무라벨 생수 3종. 2021년 판매량이 전년 대비 1,670% 증가한 2억9,000만 개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ESG의 ‘E’를 변화시키는 기업들

ESG 경영에서 기업들이 빠르게 받아들인 분야는 바로 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al, 지배 구조Governance 등에 비해 소비자가 변화를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소비 변화가 가장 빠르게 두드러지는 분야는 바로 식품과 뷰티업계. 아모레퍼시픽은 용기를 없애고 리필 스테이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아울러 온라인 몰에서 주문 시 종이테이프와 종이 충전재 등으로 100% 재활용 가능한 포장으로 배달한다. 이니스프리 등의 브랜드는 공병 모으기, 친환경 페스티벌 등의 행사를 개최하며 친환경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식품 브랜드로는 빨대 없는 요구르트를 내놓은 매일유업이 대표적이다. 그 배경엔 그린 슈머의 힘이 있다. 빨대는 크기가 작아 재활용 선별 과정에서 분리하기 어려워 그냥 버려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비자들이 빨대를 한데 모아 브랜드로 돌려보내는 캠페인을 했고, 이 빨대 어택에 매일유업 COO가 손 편지로 답한 것. “매일유업은 현재 빨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음용하기 편한 포장재를 연구 중이다. 개발과 함께 빨대 제공에 관련해 합리적인 방식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매일유업은 엔요, 상하우유 제품에 빨대를 없앴다. 기업 측은 빨대 제거, 제품 패키지 경량화 등으로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342톤가량 저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또 업계 최초로 무라벨 생수를 만든 ‘아이시스 8.0에코’가 있다. 실제 해당 제품이 처음 등장하자 그린 슈머는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2020년 출시 이후 판매량이 1년 만에 1,670%를 달성한 것. 이에 2022년 ‘아이시스8.0 에코’의 생수 시장점유율은 2%에서 32%까지 급성장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며 그린 슈머의 직격탄을 맞은 배달・배송업체들도 소극적이지만 친환경 행보를 시작했다. 엄청난 과대 포장 때문에 반환경 기업으로 낙인찍힌 쿠팡은 부랴부랴 스티로폼 포장재를 대체한 프레시백을 내놨고, 배달의민족은 앱 결제 화면에서 일회용품 안 받기 선택 메뉴를 추가했다.


늦었지만 필수, S와 G

환경 파괴에 비해선 느린 속도지만, 사회적 책임과 지배 구조 등 기업의 윤리적 영역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MZ세대가 바라보는 ESG 경영과 기업의 역할’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기업의 바람직한 역할을 묻는 질문에 ‘투명윤리 실천 경영’이 51.3%로 1위를 차지한 것. 2위는 28.9%를 차지한 ‘일자리 창출’이었다. 그리고 환경보호’(13.2%), 봉사 활동(3.4%), 성실 납세(2.1%)가 뒤를 이었다. 공정, 정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요즘 소비자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다.
2020년 론칭한 에어로케이는 경쟁사와 전혀 다른 젠더리스 유니폼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어느새 대상화된 승무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는 신선한 시도였던 것. 객실 승무원 채용에선 ‘외모 규정, 학력·나이 제한 없음, 타투 허용’이라는 파격적인 기준과 함께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본질을 어필했다. 해당 캠페인은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차별화 포지셔닝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21년 에피 어워드에서 브론즈를 수상했다.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에 전통적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돈을 벌어들인 만큼 나누고, 영향력을 가진 만큼 옳은 목소리를 내기를, 공정하기를 원한다. 바야흐로 윤리의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