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도시 ③
중세 마을이 그대로 보존된 빨간 지붕의 도시
Český Krumlov
체코 체스키크룸로프
아름답다고 소문난 수많은 유럽 도시 중에서도 중세도시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체스키크룸로프다. S자로 흐르는 강변에 자리 잡아 ‘체코의 말발굽’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신비로운 중세도시 체스키크룸로프로 안내한다.
Writer. 두경아
체스키크룸로프는 블타바강이 도시를 S자로 가로지르는 지형 덕분에 과거 무역의 거점으로 번성했다.
‘보헤미아의 진주’, ‘작은 프라하’라 불리는 체스키크룸로프 Český Krumlov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다. 2023년 기준, 인구 1만 2,000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중세 건축물 덕분에 동화 속 마을로 사랑받으며 연중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특히 구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중세 건물과 도시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살아 있는 ‘중세 박물관’이라 불린다.
체스키크룸로프의 특별함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시는 블타바강이 S자로 굽어 흐르며 관통하는 형태인데, 이러한 입지적 요건 덕분에 13세기부터 성이 세워지고 마을이 형성되면서 보헤미안 지역의 무역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마을이 건설된 뒤에는 부유한 귀족 가문들이 수백 년에 걸쳐 정착하며 마을을 건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4세기 중반부터 300년간은 보헤미아 왕국의 귀족이던 로즘베르크 가문이 통치했다. 이 가문은 이름 있는 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고딕 양식의 성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 했고, 이 시기 시민들의 삶도 풍요로워 일반 주택도 고급스럽게 지었다. 도시는 19세기까지 약 5세기 동안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였고, 외부 세력의 방해도 받지 않아 평화롭게 발전할 수 있었다. 덕분에 1,0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도시는 중세 시대 도시의 구조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 온전히 유지되고 있다. 다만, 냉전 시대에는 마을이 상당 부분 훼손됐으나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대부분 복구됐고, 1992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체스키크룸로프 구도심은 걸어서 한두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체스키크룸로프 성을 중심으로 블타바강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골목골목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블타바강으로 둘러싸인
매혹적인 구시가
중세로의 시간 여행은 스보르노스티 광장 Náměstí Svornosti에서 시작된다. 광장은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양식의 알록달록한 집들로 둘러싸여 있어 흡사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한다. 광장 중앙에는 1715년에 페스트 퇴치를 기념해 세운 ‘마리아 기둥’이 서 있고,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시청사 건물이 있다. 시청사 건물은 관광 안내소로 사용하고 있어 관광객에게 필수 코스다.
광장 남서쪽에는 도시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뾰족한 탑을 가진 성당이 있다. 14세기에 지은 고딕 양식 건축물 성 비투스 성당 Kostel svatého Víta이다. 이 성당 최고의 명물은 15세기에 그려진 예수의 십자가형을 그린 프레스코화다. 또 내부에는 아치 모양의 천장,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제단, 대형 오르간 등 눈여겨봐야 할 요소가 많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실레의 외가가 있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한때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 머무르며 그림을 그렸다. 스보르노스티 광장 동쪽에는 그를 기리는 에곤 실레 아트 센터 Egon Schiele Art Centrum가 자리한다. 아트 센터는 체코·오스트리아·미국의 합작품으로, 에곤 실레의 삶의 기록과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체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에곤 실레 아틀리에도 함께 돌아보자.
광장 주변은 블타바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태를 띠는데, 이곳에서는 3개의 다리를 통해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3개 다리 중 하나인 이발사의 다리 Lávka pod Zámkem는 체스키크룸로프성 아래 걸쳐 있는 목조 다리로,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포인트로도 인기 있다. 또한 다리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다리를 건너면 마을을 우회하는 라트란 Latrán 거리로 이어진다. 이 거리는 귀족의 하인들이 살던 구역으로, 다양한 색깔의 중세 주택을 만날 수 있다. 골목마다 들어선 작은 상점과 레스토랑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4세기에 지은 고딕 양식 건축물 성 비투스 성당. 성당 내부에는 예수의 십자가형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에곤 실레의 외가가 있던 도시다.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에곤 실레 아틀리에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체스키크룸로프성
체스키크룸로프성 Český Krumlov Castle은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으로, 작은 도시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13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건축했으나, 14세기에 증축, 16세기에 르네상스식으로 재건축했고, 이후 2세기 동안 바로크양식과 로코코 양식으로 개보수했다. 덕분에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건축의 발전상을 고스란히 볼 수 있으며, 중세의 멋진 성곽과 르네상스식 주거지도 즐길 수 있다.
가이드 투어만으로 입장 가능한 성 내부에는 300개의 방과 넓은 정원, 박물관 등의 시설이 보존돼 있다. 특이한 점은 성으로 진입하는 다리 아래 조성한 해자에 물을 채우지 않고 곰을 키웠다는 것이다. 1707년부터 현재까지 곰 세 마리가 서식하고 있어서 또 다른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성의 상하부는 아치형 다리인 망토 다리 Plášťový most로 연결돼 있다. 이 다리는 성을 보호하기 위한 요새 역할로 지은 것으로, 석조 기둥 위 3층 규모의 아치를 덮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리는 마을을 내려다보는 전망대로도 유명하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크 극장과 마구간, 정원으로 이어진다.
1766년 성안에 추가로 건설된 바로크 극장 Zámecké barokní divadlo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로크식 극장이다. 기계식 무대장치를 갖추었으며 오케스트라 피트, 무대 및 기계, 극장 의상, 액세서리, 조명 기구, 대본 등 대부분의 시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가이드 투어에 참여해 화려한 극장 내부를 돌아볼 수도 있다. 성안에는 4개의 정원과 큰 공원이 있는데 이 중 동쪽에 위치한 자메츠카 정원 Zámecká zahrada은 17세기 바로크양식으로 조성한 곳으로, 엄청나게 넓은 정원에 화단과 분수・조각상 등이 들어서 있어 산책하듯 돌아보기 좋다.
약 6층 높이의 체스키크룸로프 성탑은 전망대로 유명하다. 탑의 중심부는 고딕풍이지만 르네상스 스타일로 완성했다. 162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체스키크룸로프 도심과 블타바강의 그림 같은 전망이 한눈에 펼쳐진다. 전망대 아래에는 당시 귀족들의 생활상을 전시하는 성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체스키크룸로프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체스키크룸로프 성탑
체코에서 규모가 두 번째로 큰 체스키크룸로프성.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건축의 발전을 보여주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17세기 바로크양식으로 조성한 자메츠카 정원. 엄청나게 넓은 부지에 화단과 분수, 조각상 등이 들어서 있다.
진짜 중세로 타임 슬립하는
‘장미 축제’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인 6월 중순,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마을 전체가 ‘진짜’ 중세 시대로 돌아가는 축제가 열린다. 이른바 ‘다섯 잎의 장미 축제 Slavnosti pětilisté růže’로, 장미가 주인공이 아닌 체스키크룸로프를 통치한 귀족 로즘베르크 가문의 문장에 장미 다섯 잎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따라서 축제는 이 가문이 번성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과 소품, 음악으로 가득 채워진다. 참가자 모두 중세 복장을 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중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축제 기간 중 중세 건축물은 더 이상 관광의 대상이 아닌 일상의 공간으로 바뀐다. 중세 시대의 음악, 연극, 무용, 펜싱, 불꽃 쇼 등 100여 개의 행사가 도시 곳곳에 마련된 무대에서 펼쳐진다. 특히 체스키크룸로프 성안에서 투어로만 진행하던 바로크 극장에서 오페라를 상연하고, 시민 공원에 있는 군사 야영지에서는 역사 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축제는 중세 의상을 입은 시민들이 로즘베르크 문양을 들고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이 직접 말이 되어 참가하는 살아 있는 체스판 경기, 중세 시대 의상을 입고 연주하는 공연,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야간 퍼레이드 등도 볼거리다. 축제에 음식이 빠질 수 없다. 통돼지 바비큐와 소시지 등은 중세 시대 조리법을 재현해 선보인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불꽃놀이다. 전통에 따라 불꽃놀이는 체스키크룸로프 성의 남쪽 테라스에서 시작돼, 축제의 분위기를 돋운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을 입고 거리로 나와 축제를 즐긴다.
6월 체스키크룸로프는 진짜 중세 시대로 돌아가는 장미 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중세 의상을 입은 시민들이 로즘베르크 문장을 들고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축제 기간 중 중세 건축물은 더 이상 관광의 대상이 아닌 그 시대의 일상 공간으로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