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IOR PLUS]Signature Hole
설해원
설악산雪과 동해海가 만든 정원園
대관령의 맑은 공기와 대청봉의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골프 라운드 후 노천 온천으로
피로까지
말끔하게 날려버릴 수 있는 곳이 있다.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설해원이다.
2022년 18홀의 매서운 코스를 새롭게 추가하며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 없이 희비를 엇갈리게
만들고 있어 ‘레전드’가 된 이곳의 시그너처 홀을 소개한다.
Writer. 조수영(한국경제신문 기자)
Photo. 설해원
대한민국 시그너처 홀
대한민국에는 540개가 넘는 골프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골프장에는 오너와 설계자가 가장 공을 들인, 그 골프장의 ‘얼굴’이라 할 홀이 있습니다.
적게는 18홀, 많게는 81홀 가운데 가장 멋진 딱 한 홀, 바로 ‘시그너처 홀’입니다.
2023년에는 한국경제신문과 함께 명문 골프장의 명품 홀을 소개합니다.
강원 양양 설해원의 레전드 코스 14번 홀(파 5·인코스 5번 홀) 티박스에 올라서니 이 공간의 이름이 온몸으로 실감된다. 저 멀리 골프장을 굽어보고 있는 태백산맥 아래 죽 뻗은 설악산 줄기가 홀을 감싸 안은 구조. 눈을 들어 올리면 푸르른 산과 나무가 들어오지만, 바로 앞에는 마치 사막과도 같은 모래 무덤만 보이는 홀. ‘자연이 빚은 절경’과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 한데 어우러져 쉽게 잊히지 않을 기억을 선물하는 홀이다.
대관령을 타고 흐르는 상쾌한 공기와 청명한 날씨 덕분인지 직전 홀까지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컨디션이 최상일때만 나오는 170m짜리 드라이버 샷도 몇 차례 날린 터. 그게 화근이었다. “여성 아마추어 골퍼치곤 장타네요. 이번홀은 시니어 티에서 쳐보시죠. 레이디 티보다 전망이 좋거든요”라는 안제근 설해원 대표의 제안에 용기를 냈다.
시니어 티에서 홀까지 거리는 430m. 레이디 티(397m)보다 33m 길게 세팅됐다. 그래도 120m만 날리면 페어웨이에 올릴 수 있는 거리. ‘오늘 컨디션이면 저 멀리 태백산맥까지 닿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티를 꽂았다.
강원도의 자연이 빚어낸
프리미엄 휴양 공간
설해원은 2007년 문을 열었는데, 당시 이름은 골든비치리조트였다. 설해원으로 명찰을 바꾼 건 2017년이었다.
시 뷰·새먼·파인 등 3개 코스 27개 홀에 웅장한 클럽 하우스와 흔치 않은 온천 수영장을 앞세워 휴양 리조트로 이름을 날렸다. 여기에 지난해 9월 18홀 짜리 레전드 코스를 더해 45개 홀로 덩치를 불렸다.
45홀을 갖춘 강원도 대표 골프장이지만 CC(컨트리클럽),GC(골프클럽) 등의 명칭을 쓰지 않는다. 그냥 ‘설해원’이다. 골프 리조트를 넘어 온천과 다양한 휴양 프로그램을 갖춘 종합 휴양 시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설악산과 동해가 빚어낸 천혜의 자연은 ‘무더위’나 ‘혹한’같은 단어를 잊게 해준다. 이곳에선 7~8월에도 26℃를 넘는 날이 많지 않다. 한겨울에도 동해의 난류 덕에 포근한 편이다. 폭설만 안 오면 한겨울에도 골프를 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노천 온천은 설해원을 다른 골프 리조트와 차별화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19억 년 전의 지각변동을 간직한 편마암과 2억3,000만 년 전 마그마의 용틀임으로 형성된 화강암의 미세한 수맥을 넘나드는 물이다.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수는 하루 1,500톤 공급된다. 한번 쓴 물은 재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다.
눈은 호강하지만 몸은 고달픈 홀
설해원 레전드 코스의 시그너처 홀
눈은 호강하지만 몸은 고달픈 홀
레전드 코스는 이름 그대로 ‘전설적인 코스가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 2019년 미국 여자프로골프 LPGA의 전설로 꼽히는 안니카 소렌스탐 및 로레나 오초아와 당시 LPGA 최강자였던 에리야 쭈타누깐, 박성현을 초청해 펼친 매치를 기념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
전반 9홀은 남촌GC, 송추CC 등을 설계한 송호 설계가가, 후반 9홀은 화산CC 리모델링과 제주 CJ클럽나인브릿지 조성을 맡은 안문환 설계가가 맡았다. 안제근 대표는 “안 설계가가 레전드 코스를 설계할 때 ‘무릉도원 같은 꿈속 세계를 구현해 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페어웨이에는 비싸고 관리하기 힘든 벤트그래스를 깔았다. 양탄자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폭신하고 촘촘한 잔디다.
시그너처 홀인 14번 홀은 그리 길지 않은 파 5홀인데도 이 글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작년 9월 개장한 이후 이글 증서를 받은 아마추어 골퍼는 한 명도 없다. 데이터 업체 CNPS에 따르면 지난해 6월에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셀트리온퀸스 마스터스에서 이 홀의 평균 타수는 4.99타였다. 대다수 프로들은 파 5홀이 나오면 이글 또는 버디를 노리지만, 이 홀에선 파 세이브만 해도 평균은 한 셈이다. 이유는 홀 곳곳에 덫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린을 3단으로 구겨놓아 3퍼트가 속출한다. 태백산맥이 만들어내는 돌발적인 바람도 변수다.
30m의 압박감은 생각보다 컸다. ‘멀리 쳐야 한다’는 부담감 탓인지 빗맞은 티 샷은 100m 정도 날더니 페어웨이에 못 미쳐 떨어졌다. 설해원에선 이곳을 ‘조경 구역’이라 부르지만, 실제론 ‘황무지(웨이스트 벙커)’란 단어가 어울렸다. “그 정도 힘이면 조경 구역을 충분히 넘길 수 있다”고 했지만, 눈앞의 풍경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일단 벙커 탈출을 노리고 8번 아이언을 잡았다.
90m 정도 날더니 첫 번째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올랐다.
대청봉이 한눈에 담기는 5번 홀 ‘명물’
세 번째 샷을 치려니 또다시 ‘벙커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 페어웨이에 공을 올리려면 줄지어 선 벙커들을 넘겨야 한다. 이 홀은 ‘티잉 에어리어-황무지-첫 번째 페어웨이-벙커 무덤-두 번째 페어웨이-그린’으로 이어진다.
4번 우드를 잡았다. 벤트그래스는 골프공을 살짝 띄워주는 조선 잔디와는 달랐다. 골프공은 잔디와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정타를 맞힐 확률이 낮다는 걸 치기 전에도 알았지만 그냥 밀어붙였다. 예상대로 빗맞았고, 두 번째 페어웨이 앞 벙커에 떨어졌다. 기자처럼 이 홀에서 헤매는 골퍼가 얼마나 많은지 설해원은 이 벙커에선 ‘벌타 없이 프리 드롭해도 된다’는 로컬 룰을 만들었다. 벙커 앞 러프에 드롭한 다음 날린 네 번째 샷도 그린에 오르지 못했다. 5온 3퍼트. 트리플 보기였다.
5번 홀(파 4·아웃코스 5번 홀)은 레전드 코스의 또 하나 자랑거리다. 티잉 구역에 서면 대청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치에 취해 점수를 까먹기 딱 좋은 홀이다. 허투루 친 공은 여지없이 그린 오른쪽에 자리 잡은 거대한 해저드에 잡아먹힌다. 파를 노리려면 안전하게 페어웨이를 지켜야 한다. 안 대표는 “수많은 프로가 두 번째 샷을 해저드에 빠뜨려 더블 보기로 무너진 홀”이라며 “아마추어라면 처음부터 ‘3온 2퍼트’ 전략으로 다가가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홀 양옆을 감싸고 있는 산단풍은 앞으로 쑥쑥 자랄 청소년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뒤편에 펼쳐진 태백산맥의 자연림은 산단풍을 낳은 부모처럼 듬직하다. 폭신한 벤트그래스를 밟으며 대청봉과 동해 그리고 푸른 하늘이 빚어낸 다채로운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18개 홀은 어느새 뒤에 남는다.
설해원은 퍼블릭 골프장으로 7분 간격, 하루 80개 팀을 받는다.
설해원의 명물 노천 온천은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수가 하루 1,500톤 공급된다.
설해원의 클럽하우스 입구
Information
규모 45홀(3,30만5,785m2/100만 평)
주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공항로 230
요금 그린피: 주중 18만8,000원, 주말24만7,000원)
문의 033-670-7700
홈페이지 https://seolhaeo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