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 ‘제2의 뇌’라 불리는 이유

히포크라테스는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한다 All diseases begin in the gut”는 말을 남겼다. 최근 장내 미생물 연구를 통해 이 말이 사실로 속속 증명되면서 히포크라테스가 생각한 기전과는 관계가 없을지라도 이 말 자체는 사람들 사이에 더욱 회자되고 있다.
아직도 장을 단순 소화기관으로 치부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장은 소화 말고도 우리 몸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신경생리학자 마이클 거숀 Michael Gershon 박사는 ‘장은 제2의 뇌’라고 했다.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 장애로 이어져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이는 ‘장-뇌 연결축 이론 Brain-intestine Axis’으로 설명된다고 한다. 해당 이론은 장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뇌와 장을 연결하는 신호 전달 역할을 해 두 기관이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뇌를 제외하고 세로토닌이 발견된 것은 장이 유일하다. 장내 미생물이 소화기 질환, 비만, 암, 치매, 우울증, 자폐증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장-뇌 연결축 이론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한다?

장의 움직임과 활동은 식도부터 직장까지 5,000만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신경망인 장신경계 Enteric Nervous System, ENS가 담당한다. 이를 일러 거숀 박사는 제2의 뇌라 칭했고, ‘작은 뇌’라 부른다. 이처럼 현대인에게 장내 미생물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장 건강이 곧 전신 건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상된 장을 회복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되돌릴 수 있다는 나타샤 캠벨 박사의 ‘갭스 Gut and Physiology Syndrome, GAPS’ 이론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자가면역질환, 알레르 기, 만성피로, 그리고 여러 대사성·정신적 문제들은 그 뿌리가 의외로 장腸 건강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소화기관 상태와 전신에 있는 미생물의 건강이 곧 신체와 뇌의 상태를 좌우한다”는 것이 이론의 핵심 메시지다.
갭스는 손상된 장벽 또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으로 인해 자가면역질환, 알레르기, 만성피로, 피부 질환 등의 대사 질환이 유발된 상태를 의미한다. 갭스는 많은 만성질환이 소화관의 문제에서 비롯되며, 특히 장 누수 문제가 독소, 덜 소화된 음식물, 병원균 등을 혈류로 유입시켜 염증과 기타 전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캠벨 박사는 신경과 전문의로 자신의 아들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으면서 자폐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심층 연구를 시작했고, 갭스 이론을 체계화시켰다. 이후 신경학적 장애와 영양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장을 회복해주는 식이요법

갭스 관련 질환이 워낙 많아 정신 심리와 인체생리로 나누어 설명한다. 정신 심리에는 자폐 스펙트럼, ADHD 주의력 결핍 증후군, 난독증, 중독, 우울증, 강박 장애, 뇌전증, 섭식장애처럼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학습장애와 정신 장애가 있다. 인체생리에는 모든 자가면역질환과 천식, 습진, 각종 알레르기, 만성피로증후군, 위염, 식도염 등 모든 만성 소화 장애 등을 포함한다. 캠벨 박사는 갭스 이론을 통해 증상이 발생하는 부위가 장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장내 미생물군이라고 단언한다. 당신이 앓고 있는 것이 류머티스 관절염, 다발성 경화증, 알레르기, 천식, 신경병증 또는 피부 질환이든 모든 질병의 원인은 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내 건강은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캠벨 박사는 만성질환 자연 치료 식이요법인 갭스 식단 GAPS Diet을 제안한다. 갭스 식단은 장 점막을 치유하고 미생물 생태계를 회복해 다양한 대사 질환을 개선하는 식이요법이다. 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갭스 식단 초기에 고기 육수 같이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중심으로 식사를 한다. 그리고 몸의 회복 상태에 맞춰 발효식품 등 다양한 자연식품을 점진적으로 식단에 추가한다. 이는 자폐 스펙트럼, ADHD, 우울증 같은 정신 건강 문제와 만성 염증, 대사 질환 등을 치료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

갭스 식단, 장 회복에 큰 도움

일부 사람은 설사, 변비, 복부 팽만감, 가스 또는 기타 소화기 증상이 없기 때문에 장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캠벨 박사는 갭스 식단을 통해 류머티스 관절염에서 다발성 경화증, 만성피로증후군에서 천식, 당뇨병, 비만에 이르기까지 만성질환이 사라지는 것을 수없이 확인 했다고 말한다.
갭스 식단은 크게 ‘장 치유 단계’라고 하는 입문 단계와 유지 단계, 그리고 재도입 단계로 나뉜다. 다만, 식단을 시작하기에 앞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없는 음식을 확실히 구분 해야 한다. 갭스 식단은 매우 제한적인 음식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입문 단계는 더욱 그렇다. 해로운 음식을 끊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좋다. 또 집에서 직접 만드는 음식을 권장한다. 같은 고기 국물이라도 시판용은 효과가 없다고 한다.
갭스 식단 음식의 핵심은 동물성 단백질과 직접 만든 사골 국물, 녹말 없는 채소 및 발효식품이다. 잎채소, 과일, 육류, 생선, 발효 유제품, 김치 등 발효 야채, 견과류, 올리브 오일, 신선한 허브, 계란 등이다.
갭스 식단 중 일부는 갭스 다이어트라 불리며 유행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치유 접근법에 가깝다. 우리가 흔히 겪는 피로, 불면, 집중력 저하, 우울감 등의 증상이 장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해결책도 장 건강에 있음을 직접 체득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다만 장 치유 단계라고 부르는 입문 단계만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1년까지 이어지며, 유지 단계 또한 2년 정도 소요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또 중요한 식품이 제외되기 때문에 자녀를 위한 갭스 식단을 고려하고 있다면 소아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