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도시 ⑧
발칸반도의 빛나는 보석
Croatia Trogir
크로아티아 트로기르
기원전 3세기에 형성된 해안 도시 트로기르.
직선 길이 500m 규모에 불과한 작은 섬에는
13세기 건축된 성 로렌스 성당과 15세기 세워진
카메를렌고 요새 등이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 있어 ‘박물관 도시’라 일컫는다.
Writer. 두경아 Photo. 트로기르 관광청
본토 남부와 치오보섬 사이 작은 섬에 위치한 트로기르는 섬 전체가 역사 유적지다.
아드리아해 연안에 맞닿아 있는 크로아티아의 항구 도시 트로기르Trogir. 이곳의 구도심은 크로아티아 본토 남부와 치오보섬 사이에 자리한 작은 섬에 형성되어 있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덕분에 섬 전체가 역사 유적지여서 ‘박물관 도시’라 일컫는다.
트로기르는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인이 무역 거점으로 건설한 도시로, 당시 ‘수컷 염소’라는 뜻의 트라구리온Tragurion이라 불렸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로마 시민의 도시로 번영했으며, 후기 로마 시대에 이르러서는 도시가 좀 더 확장된 후 요새화됐다. 1420년부터는 베네치아공화국의 일부가 되면서 성당과 요새가 세워지고, 광장이 조성됐다. 이 시기에 도시 메인 광장이 완벽하게 재정비됐으며, 요새 또한 두 차례나 재건하고 보강됐다. 현재 트로기르의 중요 문화재 대부분은 13세기부터 15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트로기르는 또한 ‘장인의 도시’라 해도 손색이 없다. 구도심의 좁은 자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장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석조 건물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작은 홈이나 선뿐만 아니라 초승달, 꽃, 잎사귀, 나뭇가지, 도끼 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트로기르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석조 표시와 기호가 남아 있는 도시로, 이 기호들은 각각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일부는 장인의 서명이나 기도의 흔적으로 추정되며, 심지어 바둑이나 체스같은 놀이판까지 발견되기도 한다. 트로기르의 장인 정신은 후대에까지 이어져 현재 예술과 공예, 요리 등의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트로기르의 중세 거리를 거닐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트로기르 구도심은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트로기르 해안가에서는 지중해 특유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도시의 관문인 북문. 이 문을 지나면 중세 시대로 이동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인 성 로렌스 대성당
트로기르의 진정한 보석 성 로렌스 대성당
트로기르 구시가지 여행은 북문 Kopnena Gradska Vrata에서 시작된다. 북문을 지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로 이동한 듯한 느낌이 든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현재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라그닌- 판포그나 궁전 Palača Garagnin-Fanfogna이다. 이곳에서는 그리스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도시 역사를 담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메인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트로기르에서 가장 저명한 귀족 시피코 가문이 거주한 시피코 궁전 Palača Ćipiko을 만날 수 있다. 이 궁전은 가문의 영화로움을 반영하듯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건축양식 및 섬세한 장식이 특징이다.
구시가지 중심에는 도시의 랜드마크인 성 로렌스 대성당 Katedrala sv. Lovre이 자리하고 있다. ‘트로기르의 진정한 보석’이라 불리는 이 성당은 웅장한 규모와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1200년경부터 무려 400년 넘는 기간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당대 최고 예술가와 건축가가 참여해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오랜 건축 기간 덕분에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된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종탑 1층은 고딕 양식, 2층은 베네치아식 플로렌틴 고딕 양식, 3층은 르네상스 스타일이 반영됐다.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는 서쪽 현관문이다. 이 문은 거장 라도 반 Radovan의 대표 작품으로, 아담과 이브 등 종교 관련한 다양한 장면이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평가받는 곳은 성 요한 예배당 Kapela sv. Ivana Trogirskog이다. 예배당에서는 지옥의 문이 열리며 횃불을 든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예배당 중앙에는 제단과 성 요한의 무덤이 있으며, 아름다운 디자인과 정교한 조각 덕분에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르네상스 기념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성 로렌스 대성당 서쪽 현관문에는 거장 라도반이 조각한 종교적 장면이 새겨져 있다.
옛 가라그닌-판포그나 궁전에서는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도시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트로기르에서 가장 유명한 귀족 시피코 가문이 거주한 시피코 궁전
공연 무대로 사용되는 공작 궁전 안뜰
역사와 예술이 살아 있는 도시의 심장
요한 바오로 2세 광장
성 로렌스 대성당 앞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광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광장을 둘러싸고 주요 유적지가 모여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집회가 열리던 장소였다.
광장 동쪽에는 13세기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공작 궁전 Knežev dvor이 있는데, 르네상스 양식의 창문과 정교한 조각이 특징이다. 내부에는 고딕 양식의 계단이 있으며, 계단 꼭대기에는 ‘귀족 회의실’을 의미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현재의 모습은 1890년 복원된 형태이며, 안뜰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와 연극 공연이 열린다.
성 세바스티안 교회 Crkva sv. Sebastijan는 도시 시계탑 Gradski Sata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1477년 흑사병에서 살아남기를 기원하며 건설되었다. 입구 위에는 성 세바스티안과 축복하는 그리스도 조각상이 있다. 교회 뒤 편에는 9세기 초에 세워진 성 마리아 교회 Crkva sv. Marije가 있으며, 현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종교 미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 되고 있다.
로자 Gradska Loža는 15세기 후반 건축된 건물로, 과거에는 법정으로 사용되었다. 로자의 기둥 일부는 고대 유적에서 가져온 것이다. 내부에는 재판석이 남아 있으며, 테이블 위에는 르네상스 조각과 정의에 관한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남쪽 벽에는 베네치아와 오스만제국에 맞서 싸운 크로아티아 총독 페타르 베리슬라비치 Petar Berislavić의 부조가 있다.
로자에서 남쪽 해안가로 걷다 보면 성 니콜라스 수도원 Crkva sv. Nikole이 보인다. 이 수도원은 1064년 트로기르 성벽 위에 건설된 것으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트로기르의 유일한 여성 수도원이자 베네딕트 수도 회의 중심지다. 이 수도원에는 기원전 3세기에 만든 ‘행복한 순간의 신’ 카이로스 Kairos를 묘사한 부조 작품이 소장돼 있다.
과거 법정으로 사용되던 로자. 기둥 일부는 고대 유적에서 가져온 것이다.
도시 시계탑으로 알려진 성 세바스티안 교회
‘행복한 순간의 신’ 카이로스를 묘사한 부조 작품이
소장된 성 니콜라스 수도원
해안선을 따라 배치되어 도시 방어의 역할을 했던
카메를렌고 요새
지중해 특유의 풍경이 펼쳐진 해안가와
카메를렌고 요새
16세기 목재 문이 그대로 보존된 남문을 지나면 트로기르 해안 산책길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푸른 바다, 야자수, 정박된 배들이 어우러진 지중해 특유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해변 산책로의 서쪽 끝에는 카메를렌고 요새 Kula Kamerlengo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오랜 기간 베네치아 지배 아래 있던 트로기르의 역사와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한 역사 유적지다. 요새는 1420년부터 1437년 사이 트로기르를 정복한 베네치아인이 건설했으며, 전략적으로 해안선을 따라 배치되어 방어 역할을 했다. 불규칙한 사다리꼴 형태로 지은 요새는 네 모서리에 각각 탑이 자리하며, 이 중 가장 오래되고 큰 탑은 14세기 완성된 것을 증축한 것이다. 현재 이 요새는 콘서트·연극·축제 등이 열리는 야외무대로 활용되며,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카메를렌고 요새의 동쪽으로는 마르몽 글로리예트 Marmontov Glorijet가 이어진다. 이곳은 프랑스 장군 오귀스트 프레데리크 루이 마르몽 Auguste Frédéric Louis Marmont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 구조물이다. 이곳을 지나면 트로기르의 방어 체계와 역사적 역할을 보여주는 성 마르코 타워 Kula sv. Marka를 만날 수 있고, 이어서 크로아티아 본토를 마주한 넓은 녹지 공원인 요새 공원 Park Fortin이 펼쳐진다.
크로아티아 본토를 마주한 넓은 녹지 공원인 요새 공원
트로기르의 방어 체계와 역사적 역할을 보여주는
성 마르코 타워
푸른 바다, 야자수, 정박된 배들로 지중해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트로기르 해안 산책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로기르
트로기르는 헬레니즘 양식과 로마 양식의 도시 배치 계획을 충실히 반영한 중세 도시 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도시는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도로는 ‘히포다 미안 Hippodamian’ 격자 계획에 따라 배치되었다. 이후 여러 세력의 지배를 거치며, 공공건물과 개인 건물 및 요새 등이 건설되었고,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교회들과 베네치아 시대의 뛰어난 르네상스·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례적일 만큼 현대적 간섭을 최소화한 덕분에 옛 도시적 요소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 도시 곳곳에서는 사회·문화적 발전의 궤적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트로기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트로기르 가는 법
트로기르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공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스플리트 공항으로 직항 항공편이 없으므로 크로아티아 최대 공항인 자그레브 국제공항으로 입국한 후 이동해야 한다. 자그레브 공항에서 바로 트로기르로 가고 싶다면, 크로아티아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자. 비행시간은 약 45분이며, 공항에 도착한 후 버스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트로기르에 도착할 수 있다. 자그레브 시내에서 이동할 계획이라면 버스를 추천한다. 자그레브 중앙버스터미널에서 스플리트행 버스를 탄 후, 스플리트 정류장에서 트로기르행 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약 6시간이 소요된다. 크로아티아의 여러 도시를 두루 여행할 계획이라면 렌터카 이용을 추천한다.